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03/16 금요일]원전, 가장 안전한 건 투명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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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란 나려면 난다’고 이야기한다. 머피의 법칙대로 “일이 잘못되려고 하면 분명히 그렇게 된다”는 의미로 아무리 여러 단계의 확인과 예방조치를 취해도 우연과 실수가 겹치고 겹치고 이어지면서 사고로 절묘하게 이어진다고 흔히 이야기 한다. 그러나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 여럿 중에 하나만 제대로 작동되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기는 징조가 있다, 수력원자력 내리막길은 아닌가?
그래서 조직의 사고와 위기엔 전조(前兆)라는 게 반드시 있다. 예를 들어보자.
* 시설.장비 수리비가 점점 늘어난다 ..... 낡고 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 시설 장비를 새 걸로 바꿔주지도 않았는데 사고 보고가 줄어든다 ..... 사고를 감추고들 있다는 반증.
* 내부 고발이나 할 말 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 회사에서 침묵하고 않고 음식점 가서 떠들다 들킨 것 처럼
* 끼리 끼리 뭉친다 ..... 파벌과 암투가 있다
* 외부 인사나 전문가의 접근이 자꾸 힘들어진다 ..... 조직의 무사안일과 이기주의 팽배
* 낙하산 인사가 많아지며 직원들이 냉소적으로 변한다 ..... 내부 불만과 자긍심 붕괴
* 지각이 늘어나거나 퇴근이 늦어지면 기강 해이 아니면 과부하이다
* 점심시간이 길어지거나 너무 짧아져도 역사 마찬가지 문제.
* 전화 받는 태도들이 점점 나빠진다면 불만이 폭발 직전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징후들이 보이면 위기로 빠져들기 전에 고쳐야 한다. (혹시 이 사고의 사전 징조를 따질 게 아니라 이 사고와 은폐가 수력원자력의 총체적 위기의 징조는 아닌가도 살펴보자.)
그렇다면 어떤 대응책이 가능할까?
*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부하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
조직의 위기를 맨 처음 전하면 역적, 두 번째 전하면 충신? 이거 안 된다.
* 과거의 위기나 문제점들을 꺼내서 개선되었는지 점검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
* 외부 전문가나 협력 관계자들에게 자기의 조직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라.
* 밖에 나가 자기 조직에 대한 소문을 모아 보라.
그런데 기어코 사고가 터졌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일단 실무자는 보고를 할 것이고 그 다음 간부들이 모일 것이다. 조직에 위기가 닥쳐 머리를 맞대면 회의는 늘 비둘기파와 매파로 나뉘기 마련이다.
사고가 나면 늘 비둘기 날고 매도 난다
비둘기파는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책임 질 거 있으면 지고 용서를 구하자’고 한다. 매파는 ‘고장 난 건 수리했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니 버티자, 보고하고 징계 받거나, 나중에 들켜서 징계 받거나 마찬가지이고 안 들키면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위기관리 대책이 옥신각신 논의된다.
그러다 발전소에서 비둘기파 의견대로 보고를 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차원에서 또 위기관리 회의가 열려 비둘기파 매파가 다시 충돌한다.
이번에는 사태 논의의 주제 폭이 넓어진다.
--- 세계 핵안보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금 한국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히면 정치적 파장이 큽니다.
--- 남들은 일본 원전 사고 때문에 핵발전을 줄이자 했지만 우리 대통령은 원전 건설을 확대해 가자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사고 터졌다고 소문내면 국제적 망신입니다
--- 이 상황에서 사실대로 보고했다간 우리 모두 살아남지 못합니다.
비둘기파는 어떻게 말할까?
--- 윗선에 보고 해야 합니다. 우리 선에서 묻어 버릴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에 나서 왜 불이 났는지, 결함이 뭔지, 다른 원전에도 같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 내용을 파악해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국무회의 아니라 청와대까지 보고가 올라간다고 해도 회의 내용은 대동소이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국제적으로 망신이고 타격이 크다, 숨기자’ vs ‘어차피 들통난다, 알릴 것 알리고 고칠 것 고치자’. 과연 이번 원전 사고는 어디까지 보고가 올라가고 대책회의가 열렸을까?
오늘까지의 언론 보도로는 사고 직후 발전소장 등 현장 간부들이 회의를 열어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로 모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발전소장이었던 한국수력원자력 위기관리실장이 어제 (15일) 보직해임됐다.
“현장의 간부들과 논의를 한 뒤 발전소장이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소장 선에서 묻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운영일지에도 사고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원자력안전위원회 파견 감독관도 모르게 하기로 했다”
누구냐? 최후 최고의 책임자는?
사고가 난 것을 알았을 근무자가 수십 명이고 협력업체 근무자도 잔뜩 섞여 있을 것인데 과연 비밀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을까? 여러 의혹이 남는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과연 사고 보고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발전소장 선에서 묻기로 한 것일까?
2. 사고 보고를 올렸더니 위에서 결정이 내려 와 발전소장 선에서 묻은 걸로 하라고 했다면?
3. 만약 그렇다면 어디까지 올라가 어느 선에서 결정돼 내려왔을까?
수력원자력이란 회사를 훨씬 넘어 그 위에 위까지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민간인 사찰 사태만 해도 배후 윗선에 금품 회유의혹이 뒤늦게 드디어 터져 나왔다. 이런 구태를 보면 권력 핵심부까지 의심의 대상에서 빼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라 보고를 안 하고 묻어버리기는 정말 어려운 사고이다.
4. 노무현 정부 때 원전 사고.고장 기록과 이명박 정부 때 원전 사고 기록을 전체적으로 비교 분석해 볼 필요도 있다. 현 정부 들어서 대통령이 원전 수출을 강조했기 때문에 문책이 두려워 여러 사고를 숨겼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늘 고장 날만큼 나던 원전들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 갑자기 고장사고가 급감했다면 보고기피, 은폐의 의혹이 짙은 것이다.
모두 꺼내 놓기 바란다. 가장 안전하고 신뢰를 받는 것은 투명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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