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9일) 국회 취재기자들 앞에 나타난 선글라스녀가 하루 종일 화제가 되었다.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에 짙은 검은색의 선그라스를 쓰고 나타난 이 여성은 자신이 새누리당 유 모 의원과 불륜관계였던 바로 그 당사자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 측은 ‘2008년 총선 때부터 조작되어 나온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삭발과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 녀는 왜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을까? 얼굴을 가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덜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불안한 시선을 감추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시선은 권력!
선글라스의 원조는 15세기, 1430년 경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연수정을 이용한 색안경에 연기로 그을려 검은 색깔을 냈다고 전해진다. 권위와 체통을 내세운 재판관이 죄인을 심문할 때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상대를 위압하는 효과와 함께 재판관의 심리변화를 심문받는 피의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이점을 활용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이곳 저곳 여기 저기 마음대로 둘러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선의 자유는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할 때 사장 자리는 한 가운데이다. 모두를 한 눈에 담기 좋게 배치한다. 왕은 아예 높은 데 앉아서 내려다 볼 권력을 갖는다. 아파트도 높아서 전경이 잘 보이면 값이 올라가고, 죽어서도 권세가 있으면 시야가 탁 트인 높은 곳으로 가 묻힌다. 가난한 서민은 등산화 신고 산에 오르면 시선의 권력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등산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일까?
시선이 얼마나 대단한 권력인가는 시험 볼 때 시험 치르는 학생과 감독관과의 시선의 마주침을 떠올리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수험생과 감독관의 시선이 마주치면 수험생이 꼬리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수험생은 감독관의 시선을 놓치고 어디를 보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감독관은 수험생들을 불안케 하기 위해 교실 뒤편으로 몸을 숨긴다. 수험생은 노출돼 감시를 받고 상대인 감독관은 철저히 자신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감춰 버림으로써 수험생을 지배하는 것이다. 교실 안에 있는 모든 학생에게 위압을 주면서 수험생들의 심리와 의식을 묶어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점령군과 독재자, 비밀경찰은 선글라스 족
선글라스는 뒤에서가 아니라 앞에서 마주한 채 시선을 감추고 상대의 의식을 지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 선글라스를 쓰고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인들 앞에 등장해 기선을 제압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 앞에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 그 툭 불거진 광대뼈 위에 얹힌 선글라스의 강렬한 지배 효과는 아직도 생생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선글라스 애용자였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밤 새워 일하느라 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아버지 김일성 국가주석이 걱정할까봐 효심에서 선글라스를 쓰게 됐다고 선전한다. 아버지 앞에서 선글라스를 쓰나? 뼈대 있는 가문에선 상상 못할 일이다.
범죄자에게 폐쇄회로 TV의 시커먼 렌즈는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이다.
남성들이 여성의 벗은 몸에 관심이 많고 자꾸 흘깃거리고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에 집착하고 사고팔고 하는 것은 음흉해서 만은 아니다. 그 시선 뒤에 은폐된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동등하면 남녀 둘 모두 그런 행동을 삼가거나 남녀 모두 동등하게 즐길 것이다. 남자들이 유독 심한 건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한 권력관계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요즘 아이돌 남성 스타가 자기 알몸을 자꾸 드러내며 식스팩 복근을 내보이는 것은 힘 자랑 같아 보이지만 문화 분야에서 강력한 소비자로 자리 잡은 여성의 권력에 남성의 몸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를 보지만 너는 나를 볼 수 없다는 시선의 독점은 이렇게 권력이자 힘이다.
정치 권력, 다시 선글라스를 꺼내 쓰다
비밀경찰, 중앙정보부 ..... 이것도 정치 권력이 감시자 몇 명을 국민의 등 뒤, 교실 뒤로 보내는 지배 행위이다. 눈앞에 있는 경찰과 검찰보다 몇 명 되진 않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는 비밀스런 감시조직이 더 두렵고 공포의 대상이 된다. 국민은 그 보이지 않는 시선에 구속당하며 굴종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비밀경찰, 비밀스런 정보부의 국민 감시는 없을 거라 여겨 왔다. 그런데 터져 나온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청와대 개입과 은폐 조작의 의혹 ..... 얼마나 경악스럽고 부끄러운 민주주의의 퇴보인가?
더욱 답답한 건 갈팡질팡 방향을 못 잡는 야권이다. 특히 제 1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속셈도 정체도 모르겠다. 권력의 반민주적 행태와 국민에 대한 감시통제의 부활을 눈 앞에 보면서도 별 말이 없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오히려 불길을 지피기도 좋겠는데 나서질 않는다. 정권 교체를 입에다 퍼 넣어줘도 목으로 넘기질 못한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지지율 조금 올라갔다고 벌써부터 선글라스 꺼내 쓰고 어깨에 힘주는 것인가?
가당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