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재단과 숙명여대가 충돌해 분규상황이다. 재단 이사회가 재단전입금 사용방식 문제로 긴급 이사회를 열어 한 모 총장을 해임했고 학교 측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래서 이사회가 총장을 해임하며 뽑아 놓은 총장서리가 있는가 하면 총장이 유고라 총장을 대신하겠다는 학교 측의 직무 대행도 있다. 거기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사장, 이사, 감사에 대해 승인 취소를 통보해 놓고 절차대로 본인들의 소명을 들은 뒤 확정지을 계획이다.
구 총장, 신 총장, 총장 서리, 총장 대행 ..... 뭔 일이래?
정작 관심을 끄는 건 숙명여대 총장 자리를 놓고 얽힌 정치정파적 배경이다. 숙대 전 총장은 이경숙 씨. 소망교회 교인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 유명한 “오렌지 아니죠, ‘어륀지’”의 주인공.
이사회가 해임했다는 지금 총장, 한영실 씨는 친박 쪽이어서 이번에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까지 맡았다. 그래서 숙명여대 총동문회장이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대표 17번도 맡았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정치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순수하게 돈 때문에 싸운다고 하지만 주위에서는 정치권을 등에 업고 싸우는 걸로 보고 있다.
3월23일 금요일, 총장실을 점거하려는 양측의 충돌을 보도한 조선일보 24일자 기사.
총장 서리 교수 - 비키세요, 총장이 권한을 상실했으니 총장 자리를 내주셔야 마땅합니다.
교무처장 교수 - 총장해임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총장서리는 직제규정에도 없습니다. 유고시에는 부총장, 대학원장 순으로 직무를 대신합니다.
총장 서리를 모시고 온 교수 - 지금은 총장이 유고가 아닙니다. 해임된 겁니다. 그러니 직제 규정을 따를 필요가 없고 이사회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사회과학대 학장 교수 - 학교행정을 관할하는 직제규정보다 이사회가 우선할 수 없습니다.
재단 전입금 등 학교재정 운용 문제라면 재단과 교수들이 맞서야 하는데 교수들끼리 이렇게 싸우니 헤게모니 쟁투라는 인상이 짙다. 국회에서 여야 충돌하는 모습의 판박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경숙 전 총장은 무려 14년 6개월을 연임했고, 2008년 이 전 총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한 총장도 이 전 총장의 후계자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의 쟁투는 막후정치와 실권장악을 놓고 신구 총장이 대립하면서 빚어진 사태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리고 친이, 친박의 정치권력이 각각의 배후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갔어, 개혁 카이스트? 어디 갔어, 민족고대?
대학이 정치와 너무 깊숙이 얽히는 것은 달갑지 않다. 특히 한국의 정치 현실이란 극도의 중앙집권에 대통령 중심이어서 집권자와 집권세력의 교체에 따라 대학이 정치적 풍파에 휩쓸리게 된다.
카이스트, 몇 달 사이에 네 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수가 잇따라 자살해 충격을 줬다. 미국 대학계에서 실적을 쌓았던 서남표 총장은 언론에 '교육개혁의 전도사'로 소개됐고 이명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신성장동력 기획단장으로 임명되었고,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녹색성장과 융합산업 추진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2009년 카이스트 졸업식에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고, 입학사정관제도 서 총장이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하지만 소관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와는 불통하고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 때문에 교육과학기술부가 속을 끓여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경쟁과 치적 중심의 학교운영, 목표를 위해 '소통' 대신 '독선'을 고집하는 서남표 총장의 모습이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정치적 비난도 들어왔다. 그러나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뒤를 받치며 지금까지 총장직을 이어왔는데 이제 레임덕으로 접어들면 어찌 될까?
지난달 카이스트 교수협의회는 서남표 총장이 교수들의 특허를 가로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서 총장은 교수협의회장 등 4명의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카이스트 역사에서 총장이 교수를 고소한 것은 처음이다. 이미 카이스트를 놓고 여야가 정치적으로 충돌한 바 있어 소용돌이는 크게 일 것이다.
정파 정치와 대학이 얽힌 대표적인 예가 고려대이다. 고려대는 고소영 정권의 맨 앞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항상 묶여 다닌다. 요즘 누가 고려대를 ‘민족고대’라고 부르는가 말이다.
거기에 대통령 친구이고 최측근이라던 고려대 교우회장을 지낸 천신일 씨는 청탁 및 금품수수 비리로 구속기소돼 항소심까지 갔는데도 징역 2년에 추징금이 32억 원이다. 온갖 공기관 임원 자리에는 낙하산으로 들어선 고려대 출신들이 즐비하다. 올해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고려대를 향해 어떤 비난들이 빗발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명문대를 나와야 출세하고 행세하는 것이 현실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옳고 정의로운 현실은 아니다. 또 명문대를 나와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천박한 허위의식이다. 이 허위의식을 대학이 바로 잡지 못하고 스스로 거품을 키우는 것은 지탄 받을 일이다. 하물며 그걸 파벌과 집단이기주의로 이어가고 서로 추켜 세워주고 낙하산으로 끌어주고 하는 건 정말 천박한 허위의식이다. 대학이 본질을 잃고 자본과 대중에 영합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아예 기성정치에 휩쓸려 둘레(둘러리) 서며 표류하다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