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 2일 세계적인 환경보호운동단체 그린피스 간부 3명에 대해 입국을 거부했다. 이들이 ‘국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사무총장 한 사람만 입국하도록 허가했다. 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서울시의 ‘원전 1기 줄이기’ 사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달 중순 그린피스 선박 ‘에스페란사호’를 타고 강원 삼척 등 원전 건설 예정지와 원전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을 하려고 온 것이다.
서울시 원전 1기 줄이기 사업은 서울시가 에너지 과소비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에너지 절약 켐페인이다. 이것은 절전, 절수 등 에너지를 줄이자는 운동이니 정부가 심각하게 문제 삼을 건 아니다. 두 번 째 활동계획, 배를 타고 원전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 정부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는 것.
그린피스가 배를 타고 원전지역을 둘러보는 게 왜 문제가 될까? 그린피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푸른 지구촌의 무지개 전사들
1971년 미국이 알래스카 암치카 섬에서 핵실험을 시작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캐나다 서부 벤쿠버 항구에 12명의 환경보호운동가들이 모여 환경운동단체를 결성했다. 그 당시 단체의 이름은 ‘Don't make a wave 파문을 만들지 마시오’ (이하 오마이뉴스 칼럼 모음집 ‘국가의 거짓말’ 참조)
배를 타고 섬으로 갈 때 환경보호를 상징하는 푸르른 지구의 평화를 의미하는 “green peace”라고 쓴 깃발을 내걸었는데 후에 이것이 단체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지구 환경을 위해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던 그린피스에게 1985년 7월 레인보우 워리어 사건이 터진다.
레인보우 워리어는 40미터 길이의 트롤 어선을 개조한 그린피스의 전용 선박이다. 레인보우 워리어라는 이름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린피스에게 선물한 책의 이름이다. 인디언 전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자연을 망가뜨리고 오염시키면 곳곳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들어 힘을 합쳐 자연을 되살려 낸다고 한다. 그 때 모인 색깔이 제각각인 사람들을 레인보우 워리어 - 무지개 전사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배가 1985년 7월 10일 밤 뉴질랜드 오클랜드 항에서 폭발해 산산조각 난다. 한 사람이 숨지기까지 했다. 뉴질랜드에 정박한 이유는 프랑스 핵실험기지인 남태평양 프렌치 폴리네시아 모루로아 환초섬 일대를 돌며 시위를 벌이려고 준비 중이었다.
당연히 모두 프랑스를 의심했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 정보기관이 그런 일을 할 리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경찰이 용의자와 증거물을 찾아내 프랑스 정보기관이 저지른 짓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프랑스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대외안전국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흥분하며 펄쩍 뛰었다. 한 달 뒤인 1985년 8월 프랑스 신문 르몽드지가 프랑스 대외안전국 짓이 거의 확실하다고 대서특필했다. 이후 현장에서 휴가를 즐기던 스위스 관광객 부부의 여권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고 진짜 신분은 프랑스 정보원임이 밝혀졌다. 다른 정보원들은 도망쳤고 갑자기 사라진 그린피스 단원 한 명은 프랑스 정보기관이 위장잠입시킨 정보원임이 드러났다. 국제적인 민간인 불법사찰이었던 셈.
사랑 때문에, 원전 사랑 때문에 ......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해명
“프랑스 국민 여러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제가 진상조사를 지시해 알아 봤더니 최종 책임자는 국방장관이었습니다. 국방장관이 시킨 건 아니고 해군이 이런 짓을 벌이겠다고 결재를 올렸는데 새로 사귄 애인하고 사랑에 빠진 국방장관이 업무를 대충대충 볼 때여서 보고서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배를 고장낼까요 폭파시킬까요 묻자 폭파시키라고 싸인을 했다지 뭡니까. 끔찍한 범죄행위이자 미친 짓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저 미테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 아무 것도 알지 못했음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어떻게 저한테는 보고도 않고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미테랑 대통령이 원자력과 핵실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배를 폭파시켜 그린피스를 저지하라고 지시했음이 밝혀졌다.
그 이후 그린피스의 모든 활동이 국제적 관심거리가 되었다. 특히 선박 시위는 아슬아슬하다 할 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벌어진다. 배들끼리 충돌하기도 하고 밧줄로 상대 배에 몸을 묶고 시위하는 등 상당히 격렬해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6월 17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 바다에서 그린피스의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추가 건설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입국이 거부된 세 명은 이전에도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번에 입국이 거부된 것은 정치적 배경을 살펴 볼 수 있다.
우선 핵안보 정상회의를 유치하고 원전 수출을 위해 원자력산업을 북돋우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그린피스가 원전 문제로 소란을 피우는 걸 원천 봉쇄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4.11 선거 전에 핵안보 정상회의를 유치해 나름 짭짤한 보수층 결집 효과를 거둔 마당에 원전 폐쇄, 원자력 산업 폐기를 주장하는 그린피스가 선거 직전에 물을 흐려 놓는 걸 정부가 방치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핵안보정상회의에 앞서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의 입국도 거부했다. 또 부산항으로 입국한 일본 환경단체 활동가를 경찰이 차량으로 쫓아다녀 환경단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막아냈는데 정작 핵안보정상회의 직전에 고리원전이 고장을 일으켜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 다음 골칫거리는 당연히 원전 반대 캠페인을 위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인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사호의 입항이다.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절대적 과제?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녹색성장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적인 ‘자이드 환경상’을 수상했다. 환경분야에서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상이다. 그런데 국제환경운동가들을 내쫓았니 다음엔 무지개 전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