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미화 씨의 불법사찰 피해 폭로에 대해 국정원이 사실무근에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법적 해석과 판례를 통해 형사소추나 민사소송이 아닌 다른 경로로 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지난 2010년 국정원은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당시 변호사를 상대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자신과 시민사회단체를 사찰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가 국민 개인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하면 이는 국민의 기본권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으며, 국가는 명예훼손이나 손해배상 소송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그 무렵 한국 인권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문했던 유엔(UN) 의사표현의 자유 프랭크 라뤼 특별보고관은 이런 입장을 밝혔다.
"공직은 언제든 비판과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비판에 대해 공직기관이나 공직자가 자기방어를 할 수는 있지만 명예훼손이나 형사법 처벌은 있을 수 없다. 국제협약 제20조에 따르면 증오나 폭력을 선동하고 타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내용일 때만 제약을 가할 수 있으며 시민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일부다"
하물며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시민이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면 진상을 밝혀 억울함이나 오해를 풀어야지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려 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
물론 법원도 역시 “국가는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항상 국민의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하므로 심히 경솔하거나 상당성을 잃은 공격인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저히 악의적으로 그런 비판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가가 증명해야 한다. 국가는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해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관련부처를 통해 국정을 홍보할 수 있다. 또 언론사 등을 상대로 정정이나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등 충분한 대응수단을 갖추고 있다”며 국정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국세청장을 비판했다가 국세청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당한 나주 세무서 직원, 오세훈 시장을 비판했다 고소당한 지하도 상가 상인들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명예훼손 형사소추나 민사소송을 남발하는 건 한국이 세계에 퍼뜨리고 있는 인권침해의 한류 현상이다. 국제 인권단체 조사 보고서에 2005년 1월부터 2007년 8월까지 20개월 동안 168개국에서 명예훼손죄로 구금된 사람은 146명뿐이다.(한국은 이 조사에서 빠졌다). 1년에 한 사람이 채 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명예훼손 형사사건은 1년에 2건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2009년 7월까지 55개월 동안 136명이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개인들끼리의 문제는 그렇다 치자. 국가기관과 공직자까지 나서서 명예훼손 형사처벌을 시도하는 건 국민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그 문제를 두고 국가 기관이 공권력인 검찰 수사와 기소권을 이용해 국민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이 일자 방법을 바꿔 민사 손해배상소송으로 1억을 내라 2억을 내라 하면서 간접적으로 위협하는 것도 부당한 처사이다. 이미 법원이 국가기관과 책임공직자는 명예훼손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판시를 했는데도 소송을 거는 것은 국민의 입을 막아버리겠다는 악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몸통과 깃털도 상하좌우가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전하는 언론 보도들을 살피면 다음과 같은 의문과 미비한 점들이 남는다.
1. 공직사회를 관리감독하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는 사찰기능이 없다. 법에 없는 사찰기능을 부여한 최종결정자는 누구인지 끝내 밝혀내야 한다. 총리실의 불법적인 사찰행위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비리의 깃털이고 불법사찰의 임무를 부여한 행위가 비리의 몸통이다.
2. 총리실을 움직일 수 있는 상위부서는 청와대뿐일 거라는 전제 아래 비판적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정보기관과 사정감찰 기관이 협력한 과거 5공 시절의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구성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즉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수직적으로 지시를 받는 깃털이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여러 깃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의심을 털어버릴 단계가 아니다. 언론이 추적해 박혀야 한다.
3. 국무총리실의 책임 규명도 미흡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속상관인 총리실장이 국회에서 ‘보고를 받지 못해 몰랐다’고 대답한 것을 근거로 총리실은 일단 비위 취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청와대 해명대로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있었고 현 정권에서도 이어 간 민간사찰이라면 총리실에서 직속상관 모르게 비밀스런 사찰임무와 요원들이 정권에서 정권으로 인수인계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의 전환은 그렇게 연속성을 갖춘 선순환 구조가 아니다. 국무총리실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가 이뤄져 진상을 밝혀야 한다.
4. 청문회와 특검을 두고 여야가 옥신각신 하는데 의미가 없다. 청문회와 특검 두 가지 모두 추진되어야 한다.
국회 청문회는 증인 채택과 시일 조정으로 여야가 다투느라 허송세월하다가 채택된 증인들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다. 그리고 청문회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자기 과시하느라 진상 규명이 속시원하게 이뤄진 적이 없다.
특검 역시 검찰력이 동원된 집중적인 수사에 미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만큼 청문회, 특검, 국정조사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