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들을 돌이켜 보자.
1. 두산 형제의 난.
그룹 회장직을 동생에게 넘기고 밀려나게 된 박용오 전 회장, 느닷없이 자신의 동생들이 불법 비자금 1,700억원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그러자 동생 박용성 회장은 ‘가족 경영 원칙을 훼손한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형이 회장으로 있으면서 저지른 분식회계가 2,800억 원이라고 자진신고한다. 결국 비자금 분식회계에 이어 총수 일가가 자신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은행 돈을 빌리고 그 돈의 이자를 회사가 부담했다는 것도 폭로되는 등 두산이 비리백화점으로 낙인찍히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 버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두산그룹하면 경영철학이 ‘인화’와 ‘가족경영’ 즉 가화만사성이었지만 요즘 두산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박용오 전 회장은 형제의 난 이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외로움을 겪다가 2009년 11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2. 현대가의 형제의 난
현대그룹도 고 정주영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2000년 후계 다툼을 벌였다. 둘째인 정몽구와 다섯째인 정몽헌 회장이 겨루었다. 아버지와 형제의 동반퇴진 등 볼썽사납게 몇 달을 싸우다 그룹 분할(현대중공업 현대건설 현대자동차)로 쪼개지면서 끝났다. 적통을 이어받은 정몽헌 회장의 판정승이라고들 했지만 정권에 관련된 비자금 사건으로 2003년 8월 젊은 나이에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몽헌 회장의 사망 후에 다시‘숙부의 난’이 벌어졌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경영권 인수에 뛰어든 고 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과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 회장 간의 다툼이었다.
그리고 2010년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다시 시아주버니와 제수씨의 싸움이 벌어져 텔레비전 광고에 세상을 떠난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등장했다. 집안 재산 다툼에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한 셈.
3. 삼성가의 형제의 난 진행 중.
장남 이맹희 회장이 처음에는 대권을 잡았다.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그룹의 후계자로 낙점 받고 활발한 경영 수업을 받다가 경영부실 등으로 아버지와 심각한 불화를 빚게 되고 결국 불명예 퇴진하며 셋째인 이건희 회장이 대권을 승계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장남인 맹희 씨를 낙마시키고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데 대한 반발과 갈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4.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은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오랫동안 재산분쟁을 벌였다. 지난 1981년 갑작스레 타계한 고 김종희 창업주가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아 1992년 분가 과정에서 뒤늦게 일이 터졌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재판만 30여 차례 열린 3년 6개월에 걸친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다 1995년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두 형제가 화해하고 재판을 끝냈다.
5. 롯데그룹 신격호, 신준호 회장 형제도 재산을 두고 법정다툼을 벌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996년 신격호 회장과 신준호 롯데우유 회장이 토지 소유권(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37만 평 부지)을 놓고 벌인 법정 다툼. 그 이후 그룹총수인 형의 노여움을 산 신준호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밀려나 조카인 신동빈 부회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다니는 수모를 겪다가 작은 계열사 롯데우유를 맡아 분가했다.
6. 한진그룹 총수 일가 형제들은 재산 상속이 불공평하다며 두 차례 소송을 벌였고 아버지가 살던 집(부암장)의 지분 분할 문제로 다투었다. 제삿날 돌아가신 아버지가 오셔서 누가 가져라 한 말씀하셔야 싸움이 끝날 거라 소리를 듣기도 했다. 주로 둘째와 넷째가 한편이 돼 맏형을 공격하는 양상. 둘째가 바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
7. 금호그룹
오너인 박삼구 회장과 동생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 간 갈등으로 형이 동생을 해임하고, 형은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금호 그룹 형제들끼리 약속한 ‘형제 공동 경영 원칙’(독립해 나가는 사람은 그룹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을 박찬구 회장이 어기면서 가문으로부터 응징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49년 창업 이후 가족경영의 대표로 꼽히는 모범기업이자 형제간 우애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신이 무너져 내린 사건.
돈은 피보다 진하다
같은 부모 밑에서 나왔다 해도 주머니는 다르다. 창업주는 한 명이지만 떠나면 남는 가족은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부인 여러 명이니 나눠 먹을 떡이 부족한 게 당연하다.
더구나 조직을 시스템과 원칙, 공정한 제도와 상식에 의해 이끌지 않고 창업주나 총수의 1인 지배체제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투명하게 상속과 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전문 경영인과 능력에 따른 인재를 모아 경영하는 게 아니라 밀실에서 가족끼리 경영하는 기업이니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 또 자식들 나눠 먹을 거 미리 마련하려니 중소기업 영역까지 싹쓸이로 긁어모으는 추한 모습도 연출된다. 이렇게 기업 경영 자체가 투명하지 못하고 편법 상속을 꾸미는데 공정하고 승복할만한 승계 시스템이 구축될 리 없고 싸움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