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8일 정부가 일간지에 게재한 광고 내용이다.
‘국민의 건강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1.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
2. 이미 수입된 쇠고기에 대해 전수조사 실시
3. 검역단을 파견해 현지 실사
4. 학교와 군대 등 단체 급식에서 제외
광고는 광고일 뿐 믿으면 바보?
정부가 쟁점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긴급히 알리겠다고 서둘러 광고를 낸 것으로 예산만 45억 원을 들였다. 이것은 광고일까? 공시일까?
광고 - 판매를 목적으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 자기의 주장을 알리는 것은 의견광고.
공시 - 국가나 공공 단체가 일정한 사항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림, 공개적으로 게시하여 일반에게 널리 알리다
정부 해명은 정부의 공고, 즉 공시가 아닌 광고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한다’는 약속이 아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 광고였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신문 광고 나간 다음에 그해 9월에 전염병 예방법을 개정하면서 ‘즉각 중단한다’가 아니라 ‘중단할 수 있다’로 바뀌었으니 당장 조치를 취할 책임이 정부에게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읽어도 정부가 신문에 실은 내용의 문맥은 의견광고가 아닌 공시에 가깝다. 어렵게 따질 필요 없이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가 국민을 처음부터 속이려고 수를 쓴 것이다. 미국에게 협상에서 밀리고 국민은 안전하게 고쳐 오라고 하는데 기가 꺾여 말도 못 꺼내 보는 상황에서 촛불 정국을 피해가려고 꼼수를 쓴 것이다.
정부가 ‘광우병 발생 즉시 수입중단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국회가 전염병 예방법에서 ‘중단할 수도 있다’로 바꾸려 할 때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이 있어 그렇게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발했어야 한다. 어쩌면 ‘중단할 수도 있다’로 바꾸어 달라고 정부가 먼저 부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최소한 당정 협의에서 만장일치로 잡음 하나 없이 합의를 본 것이다.
일단 광고에 홍보로 국민 반발을 피한 뒤 국민과 야당의 눈을 피해 법령을 몰래 바꿔 미국산 쇠고기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수입해 들여오는 걸로 조치한 것이다.
한미 합작 물 타기, 초점 흐리기
이걸 광고냐 공시냐를 놓고 따지고 들면 바보가 된다. 국민을 속인 책임자들을 색출해 책임을 묻고, 수입중단 방책을 마련해야 할 판에 광고, 공시를 놓고 다투는 건 프레임 조작에 말려드는 것이다. 정부가 연일 펼치고 있는 미국 소 광우병 발생에 대한 물 타기 내지는 초점 흐리기 프레임 조작을 살펴보자.
정부의 대책 발표 내용은 육우가 아닌 젖소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중단, 급식중단이라더니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젖소인데 뭘 그러느냐’로 말을 바꾸는 것이다. ‘미국에 더 이상 광우병은 없다, 있다’에서 ‘젖소냐 아니냐’로 슬그머니 초점을 옮기고 있다. 우리 정부의 발표는 당연히 미국 정부의 해명에 기초한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프레임 속으로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을 끌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렇게 초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는 교묘한 프레임 전환은 광우병 파동 때 이미 겪은 바이다. 광우병 위험이 상존하는 미국 쇠고기를 사다 먹을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우다 어느 날부터 30 개월령 송아지이냐 아니냐로 프레임이 바뀐다. 또 30 개월 넘어도 뇌, 척수 등 특정위험부위만 아니면 드셔도 된다는 특수부위 논쟁도 벌어졌다. 수입을 하는 쪽으로는 그렇게 꼼꼼하게 따지던 정부 관계자들이 수입중단 문제로 들어가면 ‘즉시 중단한다’와 ‘중단할 수도 있다’가 그게 그거라고 입 다물고 있었다?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이번에 발견된 광우병 소는 30개월 미만은커녕 그 논란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프레임을 30 개월이 아닌 젖소다 아니다로 가져가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축산 구조와 사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고 아주 희귀한 생물학적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고 프레임을 돌연변이로 가져간다. 이제 세계는 돌연변이에 의해 광우병이 생길 수 있느냐 없느냐, 돌연변이 광우병은 전염성이 있냐 없냐로 시끌벅적 할 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 쇠고기 즉각 수입중단 실시’라는 현안은 논점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미국식 프레임 조작에 놀아나기’를 4월 25일 KBS 9시 뉴스 제목을 통해 살펴보자. 제목 한 줄만 살펴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美, 6년 만에 광우병 젖소 .... 정부 검역 강화”
‘광우병 젖소’라고 제목부터 ‘젖소’를 넣고 6년 만이라며 오랜만에 등장했다는 뉘앙스도 풍겨내고 있다. 수입 중단 이야기 대신 ‘검역 강화’ 즉 수입하는데 안전 조치를 더 철저히 하면 된다는 전제 아래 시청자를 설득하고 있다.
광우병 발생 위험이 있는 나라는 지구촌 전체의 보건을 위해 예방적 조치로 쇠고기 제품을 수출해선 안 된다. 광우병이 발생했다면 스스로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이 스스로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가 함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고 상식이다.
정부가 고기구이 식당을 차린 것도 아닌데 무슨 육우 젖소, 등심 안심 특수부위, 어린 송아지 늙은 소를 그리 꼼꼼히 따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