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동자의 날.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다.
노동자와 협동조합은 함께 해왔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다. 근대 협동조합의 시작은 1844년 8월에 영국 맨체스타시 부근 로치데일에서 동맹파업에 실패한 28명의 노동자들이 설립한 로치데일공정개척자조합이다. 오늘날 형태로는 소비자협동조합의 효시이다. 유엔에서도 협동조합 업무는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도 협동조합은 해방 전까지 노동운동과 맥을 함께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조합이 관제화되면서 노동운동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가 되어버렸다. 오랜 관제조합과 이익추구형 조합에 의해 우리 협동조합의 구조와 문화가 왜곡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協同組合, cooperative, co-op)은 경제적으로 약한 처지에 놓인 영세한 생산자나 소비자가 서로 도와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조직이다. 이익을 꾀하는 게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고 조합원의 경제활동을 서로 돕는 것이 목적이다. 산업혁명에 의하여 대기업의 힘이 커져 시장을 지배하며 소기업과 소시민을 압박하자 이에 대항하기위해 시작된 것이다. 대기업의 산업 독과점, 영세 기업의 몰락, 가격의 지배와 조작, 고리채 범람 등에 맞설 힘은 힘없는 다수가 뭉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을 탐욕이 아닌 필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협동조합이다.
대한민국의 신협운동은 1907년 금융조합이 설립되어 신협과 비슷한 업무를 했고, 1960년 5월 가톨릭의 메리놀 병원, 성분도 병원, 가톨릭 구제회의 임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최초의 신협인 성가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다.
FC 바르셀로나, 썬키스트, 요플레 ..... 모두 협동조합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에 속한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 그 유명한 메시가 소속된 이 팀이 지역주민들이 세운 ‘협동조합’이다. 돈을 벌려고 만든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기네 지역의 자존감을 높이고자 만든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지역주민 17만 명이 참가했고 투표로 구단 대표를 뽑는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유니폼에는 기업 광고가 없다. 최근 들어 세계 빈곤 아동을 돕기 위한 유니세프 광고를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부심을 돈에 팔지 않는다’가 그들의 구호.
태양의 입맞춤, 오렌지주스를 생산하는 선키스트도 협동조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감귤 재배농가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중간 도매상들이 이익을 챙길 뿐 자신들은 불이익만 당하자 직접 생산판매유통에 나서고자 만든 조합이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주의 감귤재배농가 6,000여 곳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요플레라는 세계적인 요구르트 브랜드도 채권은행단에 넘겨지기 전에는 프랑스 낙농협동조합 소디알(Sodiaal) 것이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대부분도 협동조합 체제 속에서 생산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세계적인 뉴스통신사 AP 통신도 언론사들이 구성한 협동조합의 한 형태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우유가 협동조합이다. 수도권과 충남, 강원 지역에서 젖소를 키우는 축산 농가들이 조합원이다.
부산에 가면 부산노동자생활협동조합이 있다. 2009년 9월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자와 가족들 340명이 1인당 3만 원 이상을 모아 총 3천만 원으로 시작했다. 노동자 중심의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으로는 사실상 국내 1호이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생산된 쌀, 과일, 육류, 채소 등을 구매해 싼 값에 조합원과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이득을 얻는다. 이익을 얻으려 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
(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자본을 댄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경제활동을 몰아가고 있다. 심지어 공공의 역할을 맡은 정부조차도 선진화라는 그럴 듯한 핑계로 국가 공공서비스를 팔아치우려는 민영화를 고집하는 시대이다. 국가자산의 민영화란 정부의 단기적인 재정건전화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결국 서비스는 똑같고 값은 올라 오른 만큼의 이익은 주주들이 챙겨가는 방식이다. 이와는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사업을 함께 소유하고 관리해 얻은 이익을 고루 나누는 방식이다.
그래서 UN은 협동조합이 여성, 젊은이, 고령자, 장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경제사회개발에 최대한 참가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가난을 해소하고 삶의 양극화를 줄일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의 주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이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나라도 그동안 농협법 등 8개의 개별법으로만 만들어져 있어 협동조합운동의 발전에 저해요인이 됐던 협동조합 관련법을 손질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5명 이상이 모이면 자유롭게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자본금의 제한규정도 없으며 신용·보험사업을 빼면 어떤 사업이든 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은 설립이 불가능했던 직원들이 조합원인 노동자협동조합도 만들 수 있다. 또 사회적 협동조합의 설립도 가능하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합이다. 그동안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은 팽개치고 돈 장사에만 치우쳐 조합원들에게 외면 받은 협동조합과는 전혀 다른 협동조합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경쟁과 낙오로 어둡고 추운 그늘을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이웃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해결책은 역설적으로 이웃을 만드는 것이다. 탄탄한 지역공동체, 주민 공동체를 만드는 것만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길이고 협동조합은 그 해결책 중의 하나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협동조합을 주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