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4일) 저녁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통합진보당 당원 한 사람이 분신을 시도했다. 당권파냐 비당권파냐부터 가리려고 하는 세상의 비정함이 비애를 느끼게 한다. 더 이상의 불행한 선택이 없기를 빈다.
진보 진영 한 쪽에선 통합진보당을 이대로 무너지게 놔둘 수는 없다며 당원가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당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재발되지 않도록 또 당의 복원을 위해서 당 내부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자중 자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토록 빈틈을 보이고 국민의 지지가 떨어지면 새로운 공안정국이 등장해 진보 진영의 기반을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 굳이 진보진영의 복원을 강조하는 것은 정파적 관심에서가 아니다. 봉건왕조와 식민지배, 종속적인 우익보수정권의 장기지배에 따른 이 나라 근대사의 왜곡을 시정하고 균형을 맞추려면 진보의 목소리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침묵의 형벌은 유용한가?
이정희 전 대표가 스스로에게 지운 침묵의 형벌에 대해 잠시 논란이 벌어졌다. 침묵이 공인된 형벌로 존재한 최초의 기록은 탈무드의 가르침이다.
“자녀에 대한 최고의 형벌은 침묵이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좀체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는다. 대신 벌을 주고자 할 때 즐기던 놀이나 텔레비전 시청을 차단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일절 말을 걸지 않는다. 격리와 침묵 속에서 스스로 잘못을 찾으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훈계 후에는 반드시 아이를 껴안아준다. 꾸짖는 것도 사랑의 한 노력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구약성서 욥기 36장은 너무 억울하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욥에게 엘리후가 침묵하라고 충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대의 부르짖음이 그대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감히 주님이 불의를 행하셨다 하지 말라.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화가 나서 침묵을 택했으나 후회하는 장면도 있다. 시편 39편, 다윗 왕이 침묵을 선언한 뒤 후회하는 장면이다.
“나는 ‘행동을 조심하고 내 혀로 죄를 짓지 않겠다. 못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는 한 나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침묵하고 지냈습니다. 심지어 좋은 말이라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점점 괴로워졌습니다.”
침묵과 격리를 형벌로 삼은 다른 예는 미국 필라델피아 이스턴 스테이트 감옥이다. 1829년에 건립돼 1971년까지 감옥으로 사용됐고 지금은 전시장이나 영화촬영장으로 쓰인다. 19세기 초반이면 백악관에도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던 시절이건만 상수도와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춘 호텔급 교도소였다. 그 지역이 퀘이커교의 영향력이 강해 죄수일지언정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참회의 감옥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모두 가기를 꺼려 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든 죄수는 독방이 주어지고 식사도 독방으로 배달되고 간수들도 복도를 걸을 때 덧신을 신어 걸음 소리를 내지 않을 만큼 침묵이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죄수의 얼굴이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완벽한 침묵과 고요 속에서 형기를 마쳐야 했다. 그러나 지역에 범죄와 죄인이 줄지 않고 비용만 커져 뉴욕 식으로 바꿨다 한다. 한 감방에 여럿을 넣고 단체로 줄 서서 배식 받고 식사와 노동 운동을 함께 즐기는 보통의 감옥으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가 외면한 그 정치가 우리를 목 조른다
가까운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정치적 침묵 속으로 밀어 넣은 예는 20세기 독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나치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록을 보면 희생된 사람은 1,100만 명이다. 그런데 당시 히틀러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독일국민의 10%였다. 국민 10%의 지지로 어떻게 1,100만 명을 학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90% 독일국민은 뭘 했을까? 방관하고 침묵했다. 유태인을 실은 기차가 자기 마을을 지날 때 그 소리에서 도망치려고 교회에 모여 찬송을 부르기도 했다 한다. 그걸로 일말의 양심을 표현한 것인지는 몰라도 침묵이 답은 아니었다.
다수 국민 뿐 아니라 독일의 관료들도 마찬가지. 묵묵히 하라는 일만 하는 것이 정권에 대한 충성인지는 몰라도 국가를 전쟁과 광기로 떠밀어 넣는 결과를 낳았다. 공무원이 양심과 직무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묵묵히 일할 때가 그 나라가 가장 위험한 때임을 이르는 대표적인 예이다.
자기 자신을 침묵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해답은 아닌 것이다.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며 선택하는 혐오와 기피도 해답은 아니다. “정치를 혐오하면 그 정치가 우리를 목 조른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겪는 형벌이 잘못된 자들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침묵을 다른 힘이나 권위가 강제한다면 형벌이 되는 것이지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침묵하겠다고 뒤로 물러서면 그건 묵비권의 행사로 봐야하지 않을까? 당의 화합과 복원을 위해 침묵을 풀고 백의종군해야 할 시기를 살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