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10년 간 적성검사에 참여한 중3학생 12만 7천5백명, 고2학생 4만 7천여 명의 자료를 분석해 공개했다.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학생들의 사교육 시간이 크게 늘어난 부분이다. 특히 여중생의 사교육 시간은 10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어났다.
학교 학과 진도 내용이 너무 어려워 다들 엄청난 돈을 내가며 과외를 받는 것이 아니다. 상당 부분은 바로 선행학습이다. 고 1학생이 고 3 수학을 배우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하나도 놀랍지 않다. 중학 때부터 선행학습 하다보면 그 정도는 누구나 한다.
누구냐, 선행학습 과외를 불 붙인 책임자는?
선행학습은 물론 학부모의 걱정을 사교육 시장이 파고들며 이뤄진다. 선행학습이 번져 간 것은 2000년대 초 특목고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이다. 중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으로 고교 입시 경쟁을 돌파하기 힘들다고 보고 다들 선행학습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학별 입시전형이 해마다 바뀌며 어려워진 것도 사교육 선행학습이 번지는 데 한 몫을 했다. 논술고사가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인 대입 전형 중 하나다. 본고사 형태의 구술 면접, 나날이 강화되고 있는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등도 사교육 선행학습 강화 요인의 하나다.
대학들도 문제이다. 논술시험을 본다고 내놓는 주제가 정상적인 고교 교육으로는 답을 적을 수 없는 ‘고난도 문제’들이었다. 고전, 철학사상,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학문의 대통합 통섭의 문제였다. 고참기자에게 답을 적으라 해도 이 책 저 책 펴놓고 사나흘 끙끙거릴 문제들이 대부분. 평소 독서도 못하고 사색에 잠길 시간도 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간 학생들이 이런 논술에 답하려면 방법은 선행학습으로 진도를 마쳐 놓고 논술학원이나 족집게 과외를 찾아가 논술 과외를 받는 방법 밖에는 없다.
선행학습의 책임은 학교에도 있다. 학교 시험문제도 1학년에게 2학년 문제를 내놓는다. 한 시민단체 조사 결과 자사고 5곳 중 3곳, 일반고 5곳 중 1곳 꼴로 그렇게 한다고 한다. 학교들마저 선행학습을 전제로 교육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문도 덩달아 맛있는 논술, 어머니와 함께 하는 논술, 열려라 논술, 논술 클리닉, 신문활용 논술,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 난리도 아니다. 그러는 여러분이나 기사 논설 논리적으로 쓰세요.
신문은 사실 ‘논술’이나 ‘입시’를 빼면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다. 입시는 가장 수지 맞는 장사 품목일 뿐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뛰는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교육이 무너지면 학원이 굳이 광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언론은 공교육과 사교육을 경쟁시키며 광고를 끌어내는 것이다. 사교육 열풍 안 된다, 공교육을 살리자 .... 고 나서면 학원이 광고를 붙이러 오는 것.
글로벌 인재를 마을 재간둥이로 전락시켜
2002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선행학습 효과에 관한 연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견줘 성적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행학습이 성적 향상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비판이 나온다. 그래서 선행학습을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하자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가 예습이고 선행학습인가, 그걸 법으로 정할 수 있는 걸까? 그거야 말로 획일적인 교육 아닌가? 라는 비판도 있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자녀의 인격발현권, 부모의 교육권 침해 등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학생평가 제도와 입시제도를 개선해 사교육과 선행학습 유발요인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를 깨뜨려야 하는 데 법으로 금지한다는 건 좋은 방책도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교육 시간이 늘어났는데 10개 직업적성검사 영역의 점수는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언론들은 창의력은 떨어졌다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신체·운동능력, 손재능, 공간·시각능력, 음악능력, 창의력, 언어능력, 수리·논리력, 자기성찰능력, 대인관계능력, 자연친화력 등이 모두 떨어지거나 제자리를 맴돈다. 말로만 소질과 적성개발이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개발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경쟁할 아이들을 옆의 친구와 경쟁시키느라 망치고 있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