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06/12 화요일]종북검증에 쓰자는 후미에, 인간의 내면을 찢어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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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기독교를 빗댄 종북 관련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종북 국회의원을 가려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옛날에 천주교가 들어와서 사화를 겪으면서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한 적이 있지 않냐”라는 예를 들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매카시적 사상검증 발언이고 기독교 수난의 역사를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기호 의원은 천주교 신자로서 예를 든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종북주의자들을 가려내 심판해야 한다는 의지는 굽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후미에, 기리시단 ...... 일본의 기독교 박해 300년
후미에는 일본의 에도 시대에 막부가 기독교(가톨릭)를 금지(1612년 에도 막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하면서 기독교 신자(기리시탄, 크리스천)를 색출해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또는 거기에 사용했던 목조/금속제의 판을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판이다. 이것에 침을 뱉거나 밟고 지나가도록 강요한 뒤 주저하거나 밟지 않으면 기독교 신자로 간주해 처형했다. 이것을 해마다 연중행사로 강요하며 1873년까지 250년에 거쳐 기독교박해가 이뤄졌다. 후미에를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은 나가사키의 영주 이노우에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어떤 결정사항에 몰래 반대한 사람을 색출해 내기 위한 방법을 ‘후미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은 1549년이다. 예수회 소속 신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스페인 출신으로 인도에서 선교하다 일본행)가 큐슈 남단 가고시마에 상륙해 당시 세력가인 오다 노부나가의 승낙을 받으면서 크게 전파돼 나갔다. 기독교도의 수가 70년 간 80만 명으로 불어나 일본 전체 인구의 5~6%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직전인 1587년 기독교가 서양세력 침략의 통로로 이용되고 일본의 통치이념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텐렌(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 일본의 정체성과 전통문화가 와해되고 국가지배 체재가 붕괴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면에는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으로 이어지는 군벌 세력들의 오랜 전쟁과 권력다툼으로 인한 국정혼란을 덮으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일본, 그 알 수 없는 나라의 뿌리 후미에
이로 인해 로마의 카타콤의 순교자보다도 더 많은 28-30만 명의 순교자가 발생했다 한다. 박해로 인한 순교자가 30만 명 정도 나왔다는 것은 당시 크리스챤 3명중 1명이 순교를 당했다는 결론.
이때 기독교 박해의 시작은 1597년 나가사키에서 26명이 순교한 사건 (십자가에 매달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처형이었음). 이후 1622년에 나가사키의 리츠야마(立山)에서 55명이 순교했고(화형과 참수형), 후미에도 1626년 나가사키에서 발발했다. 1637년 가혹한 처벌과 과중한 세금 때문에 기독교도를 주축으로 주민 폭동도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1637년 발생한 시마바라의 난이다. 3만 7천여 명이 석 달간 정부군에 대항하다 모두 전사하거나 처형당했다. 이후 1년간 계속해 저항하다 정부군에 학살된 사람을 모두 합치면 12만 명 정도 된다는 대규모 민중봉기 사건.
당시 기독교도들에게 가해진 박해는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처형과 고문, 감시제도의 원조 종합판이다. 처음에는 십자가형이나 화형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도들이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이자 최대한의 고통 속에 죽도록 갖가지 방법들이 고안됐다.
썰물 때 갯벌에 묶어두고 밀물 때 서서히 익사시키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지만 끓는 유황열탕이나 끓는 물, 오물 등을 이용해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한 방법들도 기록에 남아 있다.
고문은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가사키와 오우라, 시마바라 지방에서 특히 잔혹하였다. 그들의 고뇌와 절망을 그려낸 엔도 슈샤쿠의 ‘침묵’은 필독서로 유명하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혹한 처벌제도를 뒷받침하는 감시제도, 불순분자 격리제도, 일가친척 연좌제, 마을주민 밀고제 ..... 숱한 방책들이 그 뒤를 따른다. 북한이 가져다 쓴 오호감시제, 집단따돌림 이지메, 자학과 가학이 뒤얽히고 꼬인 채 속마음을 끝내 숨기는 사회적 성격, 무조건 맹종하는 집단심리, 집단자살, 묻지마 불특정다수 집단살인 범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남경 중국인 학살, 끈질긴 역사왜곡 및 잡아떼기 ...... 일본의 숱한 병리적 현상의 뿌리가 후미에로 대표되는 기리시탄 박해에 집약돼 표현되고 있다.
후미에 - 인간의 내면을 찢어발기다.
지금부터 140년 전인 1865년 규슈 나가사키, 오오우라(大浦)라고 하는 곳에 프랑스 인들에 의해 오우라 성당이 지어졌다. 기독교 박해 300년 만의 일이다. 외국인들만으로 헌당식이 치러지고 두 달 뒤 인근 우라가미 마을 일본인 남녀 10여명이 갑자기 교회당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들이 그동안 숨어 지내 온 기독교인(가쿠레 기리시탄)임을 밝힌 사건이 발생했다. 300년 만에 이뤄진 신앙고백인 셈이다. 그래서 우라가미 기리시단이라는 말까지 생겼으나 이들도 이후 거의 모두 색출돼 순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1873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공식적으로 풀렸다.
이런 시련의 역사로 나가사키를 기독교의 성지로 여기기도 하지만 나가사키에는 기독교를 불길하게 여기는 두려움도 공존한다. 일본 3대 축제에 들어가는 나가사키 쿤치 마쯔리(축제)에서는 최근도 십자가를 밀봉해 가둔 뒤 행진함으로써 기독교 박해 당시의 트라우마가 왜곡된 형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학살된 기리시탄 가운데 조선 기리시탄들도 많았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압송된 조선인 중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정리하자면 ‘후미에’는 속내와 사상을 알아내기 위해 인간의 내면을 찢어발기는 가혹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권력이 민심을 장악하고 정치적 실패나 전쟁 실패의 후유증과 책임을 무고한 이들에게 덮어 씌워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려는 정략적 술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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