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축복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 말을 전한 곳은 음성 꽃동네이다. 1976년 오갈 데 없이 떠돌며 구걸로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열었던 ‘사랑의 집’이 꽃동네의 시작이다.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재활의 길을 열어가는 모습에 온 국민이 감동해 1981년 후원이 시작됐고 1984년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를 받아 오늘에 이른다. 꽃동네 안에는 노인요양원, 심신장애인 요양원, 아동양육시설 등 7개의 시설이 마련돼 있고 전국에서 모여든 2,04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꽃동네는 지난 1999년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에 진출했고, 2002년 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메큘라와 뉴저지주 에섹스 카운티에서도 ‘테메큘라 꽃동네’와 ‘뉴저지 꽃동네’가 문을 열었다.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한국의 꽃동네 정신을 미국에 전파한 것. 물론 한국과 미국의 꽃동네는 설립취지와 이념이 같을 뿐 재정과 운영은 전혀 별개인 단체이다.
복지시설은 전국구, 예산은 자치구?
2012년 음성 꽃동네 전체 예산 230억 규모. 충청북도가 99억 원을 지원하고, 충북 음성군이 66억 원을 지원했다. 전체 예산의 72%를 충청북도와 음성군이 부담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얼마를 지원했을까? 음성군보다 1억 원이 적은 65억 원을 지원했다. (이하 충청리뷰 6월15일자 참조).
그렇다면 음성 꽃동네는 충청북도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인 지역 시설일까? 꽃동네 생활자 중에서 충청북도 사람은 2천여 명 중 390 여명으로 20%가 채 안 된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노숙인, 장애인들을 충청북도와 음성군이라는 지방자치단체가 힘겹게 돌보고 있는 중이다. 음성군은 재정자립도가 26% 밖에 안되는 지자체이지만 중앙 정부보다 많은 예산을 꽃동네에 지원하며 허덕이고 있다. 음성군 전체 복지예산의 3분의일에 맞먹는 예산이 꽃동네로 투입된다.
정부가 2004년 7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키워준다며 국가보조금 사업 중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게 넘겨주면서 지역의 꽃동네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재정의 70%를 부담하던 중앙정부가 25%부담으로 물러섰으니 다연한 귀결. 2008년 감사원의 감사도 노인,장애인 시설, 정신요양시설의 지방이양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가 전국적인 복지시설로 지원할 것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권한을 이양한다고 넘겨준 사업이 90개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55%~ 60%는 사회복지사무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 부담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이때부터이다.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새로운 복지정책을 도입하거나 확대하면 지자체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0~2세 무상보육 확대 시행 몇 달 만에 지자체장들이 대정부 시위농성에 나서려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공무원 봉급도 제때 못주는 지자체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지자체가 감당해낼 방법은 없다. 결국 중앙정부와 여의도 정치권이 생색은 다 내고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뼈골 빠지게 뒷감당하는 셈이다.
때론 복지비가 자치 예산의 50% 이상 5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사업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옮겨지면서 특정 자치단체들은 얻어올 것도 못 얻어와 국가가 마련해주는 복지마저도 빈익빈 부익부가 이뤄진다. 복지 분야의 매칭펀드나 국고지원은 훨씬 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많던 복지 논의들은 누가 다 삼켰을까?
복지예산 이야기를 장마철을 앞둔 시점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예산편성은 4월 말에 내년도 예산 편성 지침이 마련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5월까지 국고보조금 요청을 중앙 정부에 제출해야 중앙 정부의 각 부처들이 이달(6월)말까지 부처별 예산요구서를 만들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다. 그러니 국가 예산을 짜는 시기는 5월과 6월이다.
지금 복지에 대해 논의도 없고 국회도 제대로 안 열리고 하면 내년도 예산은 현장의 요구와 국민 여론과 정책환경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하던 대로 짜 올린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어려워질 경제여건과 부의 양극화에 대한 대책이 되질 못한다. 결론적으로 다음의 것을 생각하며 정국을 살피자.
첫째 복지에 대한 논의가 정쟁에 묻혀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는 허울만 좋고 부담은 엉뚱한 데로 떠넘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지가무너져 가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복지도 안 된다.
셋째 복지 슬로건은 넘쳐 나지만 실제로 예산도 추진 능력도 없는 것을 떠벌려 국민에게 혼란을 주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