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축구 열기에 뒤덮여 있다. 유로 2012 조별 리그가 진행 중이다. 밤 사이에(우리나라 시각 19일 새벽) C조 최종전이 펼쳐졌다.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꺾고 C조 1위로 8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이탈리아도 아일랜드를 누르고 C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스페인, 이탈리아 국민이 자기 나라 대표팀의 8강 진출을 응원하는 동안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사상 최고치인 7.22%를 기록했다. 국채금리가 7%를 넘어서면 국제자금 조달이 불가능해 국가 부도에 준하는 위기상황이다. 또 이탈리아도 국채금리가 6.15%를 기록해 불안하기만 하다. 축구라도 8강에 올랐으니 위로가 될까?
그래도 좋댄다 ..... 하긴 우리도 그랬지
이미 부도상황인 그리스도 이번 유로 2012 축구대회에서 막강 전력의 러시아를 꺾으며 B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마침 그리스 총선에서도 유로에 극렬히 반대하던 좌파세력이 뒤로 밀리고 친유로 세력이 승리를 거뒀다. 축구에서 그리스가 극적으로 러시아를 이기며 8강에 진출한 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반감을 조금 누그러뜨린 건 아닐까 해석도 하는데 아주 터무니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리스의 유로존 위기를 풀려면 독일이 적극 도와줘야 하는데 오는 23일 유로축구 2012 8강전에선 독일과 그리스가 승부를 겨룬다. 유럽 각국은 독일이 축구에서 이기고 대신 그리스 문제 해결을 위해 돈을 확실히 좀 풀었으면 하는 분위기.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축구는 8강에 오른 3 나라, 축구가 끝나면 뭐가 남을 진 몰라도 당장은 좋댄다.
우리 축구 팬들은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때의 상황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청소년 대표팀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폴란드와 함께 세계 4강에 진출해 한국의 벌떼 축구를 세계에 선보였던 대회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이 당시 국가부채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들로 꼽혔는데 모두 4강에 진출해 쓴웃음을 자아냈었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축구와 국민 여론에 따라 뜨고 가라앉는 정치는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국 팀이 국제대회에서 선전하면 정치가 슬그머니 치적으로 삼으며 국민통합의 방편으로 이용한다. 자국 팀이 형편없는 졸전을 펼치면 국가대표 감독, 선수, 축구협회를 공공의 적으로 돌려 여론의 뭇매를 맞게 한 뒤 정치권은 정책 실패의 비난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가기도 한다.
축구는 조국이야!
유럽 축구와 정치의 동반 역사를 살펴보자.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축구 경기가 열리면 어김없이 경기장에 나타나는데 왕림하신 김에 연설까지 하는 걸로 유명했다. 무솔리니는 아예 1934년 월드컵을 유치해 파시스트 정권 홍보에 잘 써먹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경기 전 본부석의 무솔리니에게 오른팔을 쭉 뻗는 파시스트 인사를 해 무솔리니를 부각시켰고 우승컵까지 선물했다.
1938년 히틀러도 월드컵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선수들은 가슴에 나치 문장을 달고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스위스에게 패해 일찌감치 독일로 돌아왔고 히틀러는 축구대표팀을 구속시켜 버렸다. ‘축구는 조국이야, 조국을 망치다니...’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는 정치적 숙적 관계가 축구 라이벌로 변형된 경우이다. 마드리드는 카스티야 지방의 중심도시이고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로 언어부터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양쪽 모두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막대한 부를 지녔지만 중앙 정치권력이 마드리드에 몰려 있어 카탈루냐는 몇 백 년 정치적 차별을 받아왔다. 카탈루냐 국기 사용 금지, 언어 사용 금지, 학살까지 자행됐다. 학살의 원흉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 팀의 광팬이었는데 프랑코 점령군들은 도시를 점령하면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카탈루냐 분리독립주의자를 색출해 처벌하고 난 뒤 카탈루냐 사람들의 자존심인 바르셀로나 축구클럽을 해체해 내쫓아 버리는 걸 주요 임무로 여겼을 정도라 한다. 물론 관영 방송들도 주로 레알 마드리드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바르셀로나는 찬 밥. 그 후 정권이 프랑코에게 완전히 장악된 뒤 카탈루냐 사람들은 홈경기장 안에서만큼은 자기들의 언어로 자기들의 노래를 부르고 정치적 구호를 외쳤다. 프랑코 독재정권도 정치적 반감과 분노를 축구 경기장에서 해소하도록 그냥 내버려두고 지냈다. 이렇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 축구팀은 숙명의 라이벌이 되어 버렸다. 눈여겨 볼 것은 마드리드 중앙집권과 레알 마드리드 팀은 미워해도 레알 마드리드 팬에 대해서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 내지는 관용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 팀. 영국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로 잘 알려진 첼시는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했다. 아브라모비치는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적 축구팀의 주인이라는 타이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독재권력이 정치.경제.문화.여론을 몽땅 장악한 뒤 축구를 정치에 직접 이용하는 사례는 사라지고 있다. 대신 국제적 자본이 축구를 지배하고 정치는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챙기는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유럽의 정치 경제와 유로 축구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