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에 얽힌 사연들을 살펴보자.
* 일본 - 기미가요
메이지 유신 때 단가집에 있는 노래를 고쳐 가사로 지은 뒤 곡을 붙였다. 독일 군악대 지휘자를 지내고 일본으로 파견된 프란츠 에케르트가 일본에 서양음악을 전파하다 부탁을 받고 일본 옛 곡조를 서양 악기에 맞게 고쳐 지금의 기미가요를 완성했다. 일본 곡의 독일식 해석인 셈. 에케르트는 서양음악에 관심이 많던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만나 대한제국 애국가도 작곡해 줬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독일보다 일본에서 더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1945년 패망 후 공식 국가가 없어졌다가 1999년 국기국가법을 만들면서 다시 부활했다. 일부 양심 일본인들 국가 제정 거부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 독일.
학교 교사가 가사를 짓고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서 곡을 따왔다. 1922년 정식국가가 됐으나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금지곡이 되었다. 가사 중에 u(:)ber Alles, ‘모든 나라에 앞서 모든 나라에 우선해 독일.....’이라는 내용이 세계 지배의 야욕을 떠올린다는 게 이유였다. 본래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조국 독일을 최우선으로 하자는 내용이다. 그래서 오해의 소지가 없는 3절 가사로만 국가로 사용한다.
* 미국
‘성조기여 영원하라 The Star-Spangled Banner’
가사는 1814년 독립전쟁 때 영국 함대의 공격에 맞서 볼티모어 항을 지키던 맥킨리 요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함대가 밤새 포격을 퍼부어 전멸했을 거라 예상했는데 다음날 새벽 여전히 성조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배위에 포로로 잡혀 있던 미국인이 쪽지에 그 감동을 써내려간 것이 미국 국가의 가사가 되었다.
“오 말해주게, 그대 보고 있는가. 새벽의 여명 사이로 ...... 그 깃발을 ..... 자유인의 땅 용감한 자들의 고향 ......” 곡은 당장 작곡이 어려워 영국 사람들이 술 권할 때 부르는 권주가, 하늘의 아나크레온 이란 곡을 가져다 썼다.
1931년 공식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국 국가로 불리던 노래도 있었다. 딕시스 랜드.
* 프랑스
1792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이웃나라 왕들은 시민혁명이 자기들 나라로 전염될까봐 프랑스 시민혁명을 제압하러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 파리를 공격했다. 그 때 프랑스 장교가 하룻밤 사이에 작사작곡한 노래가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 국가이다.
“일어서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다. 진군이다. 놈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다 뿌리자.....”
그렇게 불리다 100년 뒤에 국가로 채택되었다. 이름을 마르세예즈라고 부른 것은 마르세유 지방에서 온 시민의용군들이 가장 먼저 이 노래를 부르며 진군한데서 비롯되었다. 제목을 번역하면 ‘마르세유 군단의 노래’.
* 영국
하나님 여왕을 굽어 살피소서. God Save the Queen.
지금 여왕 치하이니 여왕이라 쓰고 남자가 왕이 되면 얼른 킹으로 제목과 가사를 바꿔 부르도록 되어 있다. 영국 민요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옛 찬송가 79장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게’가 이 곡이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2개) 자메이카 캐나다 투발루 지브롤터 등에서도 왕실 찬가로 쓰인다. 영국령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대개 따로 갖고 있고 왕실찬가를 먼저 연주한 다음 국가를 연주한다. 스포츠 경기 때는 자기들 국가만 연주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잉글랜드는 엘가가 작곡한 ‘희망과 영광의 땅(위풍당당 행진곡 1번)’을 국가로 갖고 있다.
* 호주
1984년 여러 노래를 두고 투표를 해 공식 국가로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라는 노래를 채택했다. 그런데 호주 국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때 다수결에서 2등으로 탈락한 노래를 더 애창한다. ‘왈칭 마틸다’. 양을 훔쳐 달아나는 날강도 일꾼을 묘사한 노래라고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누가 그런 노래를 제 2의 국가로 부르겠는가.
호주가 시민군의 전투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때 가장 용감히 싸운 사람들이 양털 깎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독립 쟁취 후 몇 년이 지나도 노동조건은 나아지지 않고 가난에 시달리자 다시 양털깎이 노동자들의 쟁의와 폭동이 벌어졌다. 노동자 투쟁이 격해지며 농장에 불도 지르고 양을 죽이기도 했다. 나중에 경찰이 주동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폭동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노예가 되느니 자유롭게 죽겠다며 자신의 몸에 총을 쏜 뒤 연못에 몸을 던진 사건을 빗대어 묘사한 노래이다.
* 스페인
국가를 연주하긴 하는데 공식 가사가 아직도 없다고 한다. 군대에서 군악대가 연주하던 곡으로 작곡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1770년에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가 왕실 행사 때마다 이 곡을 연주하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가가 되었다. 공화국, 프랑코 독재정권 때 국가가 바뀌었다가 1997년에 공식 국가로 확정. 국가에 가사가 없어 흥얼거려야 하는 게 망신스럽다고 생각한 알레한드로 블랑코 대통령이 국가적으로 가사를 공모했으나 실패. 스페인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쉽다. 종족으로는 이베리아, 켈트, 게르만, 페니키아, 무어 족 등이 섞이고 섞인 다인종 국가에 언어도 10개 정도나 존재하니 국가 제정도 쉽지 않을 듯.
* 네덜란드
1574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곡은 프랑스 노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가사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친 역사를 이야기한다. 16세기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지배할 때 네덜란드인 총독이 스페인의 차별과 학정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이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독립해방의 결의를 다져 나가는 내용이다. ‘나는 평생 스페인 왕을 공경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싸우겠다 .....’ 이런 내용의 연설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가사이다. 그래서 네덜란드 국가를 부르면 가슴이 뿌듯해지는 건 스페인 사람들. 나는 평생 스페인 왕을 공경해 왔다 ..... 이 부분은 스페인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도 한다. 450년 전의 옛날 말로 쓰였고 6절까지 있어 네덜란드 국민들도 확실히 외우지 못해 대충 부른다.
* 스위스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만시아어 4개를 공식 언어로 해 국가 가사도 4개의 언어로 돼 있다.
* 인도
원래 가사는 뱅골어이나 지역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공식 언어가 22개.
*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는 공식 언어가 11개인데 이 가운데 5개를 골라서 국가에 썼다. 1절부터 4절까지 가사의 언어가 다르다. 1절은 코사어.줄루어가 섞였고 4절은 영어.
*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1947년 6월에 심의를 거쳐 국가를 채택했다. 북한헌법(165조)에도 이 노래가 애국가라고 명시해두고 있다. 그러나 자주 부르지는 않고 대부분 행사에는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불러왔다.
애국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흠결이 있다 한다. 친일파의 흔적도 들어 있고 공식적으로 국가로 채택한 것도 아니라 한다. 그러나 험한 역사 속에서 내 동포가 함께 부르고 울고 웃고 한 노래면 국가로서의 자격과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국가와 조국은 의미가 다르다. 공식적인 국가가 필요해 만들겠다면 국가적으로 만들어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면 된다. 멋지고 아름다운 국가를 새로 만들자는 것은 국민이 의견만 모아지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나라사랑의 마음을 담아 불러 온 노래는 애국가로 함께 부르면 된다. 세계 모든 나라도 저마다 아픈 역사 속에서 우연히 운명처럼 만들어진 노래를 국가로 쓰고 있다. 그런데 공식 절차를 밟지 않았고 헌법에 들어 있지 않아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할 수 없고 안 부르겠다고 한다면 너무 완고하고 편벽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