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언론사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함께 한 ‘2012년 당당한 부자 관련 전국민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전국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62.2%가 “부자의 노력을 인정은 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부를 이룬 노력도 인정하고 존경도 한다” 17.2%, “부자들의 노력을 인정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다” 19.3%였다.
‘부자는 싫어’는 복합적 일반화의 오류
조사 문항과 내용을 자세히 읽지 않고 기사 내용만 훑어본다면 자칫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우선 ‘부자가 누구냐?’하는 정의의 문제도 명확히 따질 필요가 있고, 부자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데 부자를존경하냐는 질문에 yes or no 로만 대답하면 그것도 오류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여의도에 갈 때마다 차가 밀려 고생했다, 그러니 여의도는 언제나 차가 밀리는 곳이다”
--- 과연 그럴까? 이것을 논리학에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불충분한 표본의 오류’라고 한다.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많았다. 부자들이 불법편법불공정을 저지른다는 기사를 자주 접했다 ..... 그러니 부자는 모두 나쁘다. 존경할 이유가 없다 - 이것 역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또 질문의 내용은 복잡하고 복합적인데 대답은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로 강요하면 오류가 생긴다, ‘복합질문의 오류’이다.
형사가 도둑에게 “이봐 조사하면 다 나와. 시간 없으니 예 아니오로 간단히 대답해. 너 요즘 부자집만 골라서 털고 다닌다며?”
--- “아니요 아닙니다”
“아냐? 그럼 부자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죄다 털고 다닌다는 얘기네. 그건 더 악질이야”
..... 이런 식으로 ‘부자 싫어? 좋아? 하나만 고르시오’하면 복합질문의 오류이다.
오류는 계속 나온다. ‘존경하는 부자가 누구냐?’ 물었더니 안철수 교수, 정주영 회장, 이건희 회장이 비슷하게 답이 나왔다. 결국 아는 부자가 몇 명 되지 않고 부자로서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많이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 사회에서 훌륭한 부자로 인정한다면 그것도 오류이다.
‘부자는 존경받아야 한다’는 당위
외국 부자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은 빌 게이츠가 압도적이고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순이었다. 세계 금융을 쥐고 흔드는 조지 소로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워렌 버핏도 조지 소로스도 공통적으로 기업을 일군 부자가 아니라 돈 굴려 돈을 번 부자들이다. 두 사람 모두 검소하게 살아갔는데 워렌 버핏은 들어가고 조지 소로스가 빠진 이유는 뭘까?
문제는 돈 버는 방식이다. 그리고 사회와 관계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조지 소로스는 돈을 버는 목표가 돈 그 자체라고 평가 받는다. 워렌 버핏은 자신의 부가 사회로부터 왔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편법을 피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데 소로스는 초단기 투자를 더 선호해 외환 시장에서 투기를 즐긴다. 결국 시장을 흔들고 혼탁케 한다.
그 다음 자식에게 물려주는 문제인데 우선 워렌 버핏은 일생 번 돈의 3/4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런데 자기가 재단 만들어 놓고 거기다 쏟아주고 자기 가족들이 차지하고 앉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자기 재단을 제쳐 놓고 빌게이츠 재단에 기부해 버렸다. 그리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도 사회적으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물려주었다. 필요 이상 많이 물려주면 자식들의 사회적 성장과 활동을 왜곡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배경이 있으니 상속세를 통해 부자들의 재산을 사회로 가져와야 한다고 떳떳하게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한 마디로 불투명하다. 자식이 몇 명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지구촌 부자 가운데 가장 비난을 많이 산 부자들을 소개한다.
바즐 자하로프
- 20세기 초 전쟁을 부추긴 뒤 무기를 팔아 돈을 번 악덕 무기거래상. 세계 1차 대전에서 포탄과 총알 등 거의 모든 탄약이 자하로프 제공이었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말이 이 사람 때문에 생겼다.
어네스트 오펜하이머
- 20세기 전반기에 광산업으로 돈을 번 인물. 정치를 상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모략을 짠 뒤 경쟁자들을 몰락시키는 비열한 경영수법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독재자.부패정권은 오펜하이머의 뒷돈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그 대가로 오펜하이머가 움켜 쥔 것은 아프리카의 광산 채굴권.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드비어스가 이 사람의 대표기업이다.
폴 케티
20세기 미국의 석유 재벌. 방탕과 탐욕으로 악명을 높인 인물. 고대 유적과 예술품 수집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폴 게티를 싫어 했지만 가장 미워한 사람들은 폴 게티의 가족들.
루퍼트 머독
- 지구촌 언론재벌로 유명하다. 전 세계에 신문사만 170여개, 위성TV채널, 영화제작 20세기 폭스사, 헐리웃의 제작사 등을 움켜쥐고 지배했다. 언론의 선정성과 극우.수구화에 크게 기여한 20세기 언론계의 공공의 적.
존 데이비슨 록펠러
- 석유재벌로 성실하게 일했으나 사업확장 방법은 너무 지독해 기업계에서는 혐오 인물. 미국의 독점금지법이 이 사람 때문에 생겼다. 세계 최고의 부자소리를 들은 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후 일생을 소박한 농사꾼으로 살아갔다.
우리 재벌이나 큰 부자들이 사회에 영향력은 있지만 존경을 못 받는 건 분명 현실이고 바로 잡히기를 바란다. 재산을 사회에 내놓으라는 요구는 굳이 하고 싶지 않다.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사회이니 그렇다. 그러나 사회문제 해결에는 책임의식을 갖고 나서야 한다. 자기 소유의 기업 현장에서 사람들이 백혈병으로 자꾸 죽어 나가면 돈을 들여 서둘러 치료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돈으로 변호사를 사서 노동자 개인 책임이라고 떠넘기고 자신이 빠져 나가는 게 옳은가?
사회적 책임의식이 없다는 건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편법탈법을 동원해 벌었는데 이제 와 뭘 어쩌겠냐는 천민자본주의의 발로이다. 스스로에게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거기에서 자긍심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