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07/04 수요일]삭발투혼? 사람들은 무얼 위해 삭발하는가


Listen Later

최근 프로야구에서 삭발선수들의 투혼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아와 엘지 선수들이 삭발로 팀 분위기를 바꾸고 연승행진을 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인 선수들까지 삭발에 동참하면서 삭발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삼손은 머리를 깎으면 힘이 빠지는 데 야구선수는 머리를 깎으면 힘이 솟는 걸까?
머리카락 우습게 여기지 말자
스포츠 선수의 삭발은 각오와 다짐, 분발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각오라고 봐야겠다. 제17회 로마 올림픽 때 일본 레슬링 선수들이 은메달 하나만 겨우 따내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모두 머리를 밀어 버렸다. 이 사진이 ‘런던 타임즈’에 실리며 서구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일본 레슬링 선수단에는 삭발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대회 끝날 때까지 술.담배를 금지령을 내렸는데 어기면 삭발, 경기에서 파이팅이 약했다고 지적 받으면 이겼어도 삭발, 아침 기상집합이 늦으면 삭발, 계단은 반드시 걸어 다님으로써 생활 속에서 체력을 키우는 것이 규칙인데 엘리베이터를 타면 삭발 ...... 이런 식으로 삭발을 정신력 강화에 접목시켜 도쿄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생명이나 정체성과 이어진 것으로 여겨 왔다. 구한말 단발령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며 차라리 목을 치라 내민 것도 그런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유럽에서는 잘린 머리카락으로 새가 둥지를 치면 그 사람은 평생 두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어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태우거나 묻는다. 우리도 빗질을 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모았다가 섣달 그믐날에 태운다.
머리카락은 맹세의 징표로 쓰이기도 한다. 여성이 머리카락을 자르면 변치 않을 사랑의 징표가 되고, 서로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라며 머리카락을 나누기도 한다.
삭발하면 흔히 불교에서의 득도식을 떠올릴 것이다. 머리카락을 마음 속 번뇌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서 ‘무명초(無明草)’라 부르며 깎고 밀면서 수행자의 본분을 다짐한다. 그러나 번뇌는 가라앉지 않고 머리카락도 자꾸만 자란다. 그러니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수행일 수밖에 없는 것.
기독교에선 삭발에 대해 부정적인 역사기록이 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이 적의 계략에 빠져 힘이 담긴 머리카락을 잃고 굴욕을 당했다. 그런데 신약시대로 넘어와 사도행전의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던 중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며 머리를 깎기도 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 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도행전 18:18)
한국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라 할 큰 교회 목사들도 사학법 개정 반대, 개방형 이사제 반대를 외치며 삭발을 했다. 삭발한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부도 삭발을 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내보이려 경기도에서 두 신부가 삭발을 했다. 그런데 김문수 경기 지사가 “신부가 삭발을 했어? 그러면 절에 들어가야지”라고 힐난했다가 가톨릭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이 일어 급히 사과했다. 과거 기독교는 ‘톤스라’라는 삭발의 전통이 있었다. 머리 한 가운데를 동그랗게 잘라내는 것이 톤스라.
삭발의 정치사회학
삭발을 스스로 행하면 결의와 약속이지만 강제로 당하면 엄중한 처벌이자 모욕이 된다. 독일 나치스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독일 점령군에게 부역한(성관계에 따른 반대급부 등) 여성들이 강제로 삭발을 당하고 모욕적인 처벌을 받는 장면은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의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3년부터 1946년 초까지 15살 이상의 여성 약 2만 명이 그러한 삭발식을 당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독일군과의 관계를 강요당한 프랑스 파리 여성들이 스스로 삭발해 저항의 뜻을 내보인 사건이 있다. 삭발에는 공개적인 저항과 공개적인 처벌 ......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는 것.
특히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놓였을 때 저항의 표시로 삭발하는 예가 많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도 삭발이 종종 있다. 삭발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박찬종 전 의원. 1987년 김대중 김영삼 두 정치지도자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삭발농성을 했다. 마침 겨울이어서 삭발하고 정치 현장을 뛰어다니는 게 몹시 고달팠을 듯. 눈이나 찬비가 내리는 날은 잠시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기도.
지식인들도 머리를 깎는다. 최근 보수논객인 강재천 씨가 중국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해 탈북자들의 울음이 들리지 않냐고 외치며 머리를 깎았다.
진보논객 우석훈 씨도 한미FTA 발효에 항의해 삭발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머리를 깎았다.
부산에서 출마한 모 국회의원 후보는 스캔들 의혹이 터지자 결백을 주장하며 삭발하고 선거운동에 나서 당선되기도 했다. 며칠 전 소개한 청주청원 통합 투표에서 통합반대에 나선 시민단체 대표들도 삭발식을 열며 항의했으나 주민투표에서 지고 말았다.
여성들도 깎을 때는 깎는다. 아일랜드 가수 시너드 오코너가 늘 머리를 밀고 활동하며 정치 색깔 짙은 노래들을 불렀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이지연 씨가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삭발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삭발이 정치인, 사회운동가의 전유물은 아니다. 경제인도 삭발을 한다. 화인코리아 대표이사인 최 모 씨는 서울 충정로 사조산업 앞에서 머리를 깎고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 씨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회생의 길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사조산업 측은 경영권을 지키려고 떼를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 채권채무와 경영권 문제가 얽혀 있는 사건.
...more
View all episodesView all episodes
Download on the App Store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By CBS

  • 4.9
  • 4.9
  • 4.9
  • 4.9
  • 4.9

4.9

40 ratings


More shows like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View all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by CBS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3 Listeners

CBS 김현정의 뉴스쇼 by CBS

CBS 김현정의 뉴스쇼

186 Listeners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by CBS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38 Listeners

아름다운 당신에게 강석우입니다. by CBS

아름다운 당신에게 강석우입니다.

3 Listeners

FM POPS 한동준 입니다 by CBS

FM POPS 한동준 입니다

0 Listeners

새롭게 하소서 by CBS

새롭게 하소서

7 Listeners

정다운의 뉴스톡 530 by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7 Listener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by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50 Listeners

세바시 청년 by CBS

세바시 청년

1 Liste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