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07/13 금요일]스위스 비밀계좌의 비밀스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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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위스 조세조약이 25일 발효된다. 이름이나 주소 등 특정 인적사항이 없더라도 계좌번호만으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두 나라 과세당국 이 합의해 지난 10일 스위스 베른에서 조세조약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이뤄지는 조치이다. 기존의 조세조약에는 정보교환 규정 등이 없어 스위스 현지계좌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조세조약 개정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명의로 스위스에 개설된 계좌의 명세 및 금융거래내역을 우리 정부가 받아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이름, 주소 등 인적사항 없이 계좌번호만으로도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협의된 부분이 핵심 포인트다. 국세청 역외탈세 조사도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스위스 은행이 예금주의 신분을 철저히 감춰주며 ‘검은 돈의 은신처’로 불리는 것은 스위스 은행법에 따른 것이다. 거액의 개인비밀예금을 주로 취급하는 스위스 은행은 약 1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ANK라는 이름도 없이 조그마한 건물에 직원 수도 많지 않은 비밀 계좌 전문 은행도 많다고 한다. 통상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는 예금주 이름 없이 숫자와 문자의 조합으로만 이뤄져 비밀을 보장하게 된다. 모든 거래는 계좌번호로만 이뤄지니 전표가 유출돼도 예금주가 드러나는 일이 없고 예금의 주인은 극소수의 은행간부 및 고위층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최소 10만 스위스 프랑(1억 3천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
비밀계좌의 비밀스런 역사
프랑스에서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위그노)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전쟁으로까지 번지다 결국 낭트칙령에 의해 양쪽이 타협을 본다. 국가가 개신교의 기득권을 보장하고 개신교는 가톨릭을 국교로 인정해 공격하지 않기로 한 것.
그러나 가톨릭 측의 반발이 이어지다 1685년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해버리자 개신교도들은 궁지로 몰리며 급히 가까운 스위스로 피신해 은행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곤란해 진것은 정작 루이 14세. 영토확장은 하고 싶고 왕실 재정은 바닥나고 어쩔 수 없이 스위스로 피신한 위그노 개신교도들에게 돈을 빌려야 할 처지가 됐다. 그래서 신분을 감추고 고객의 비밀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스위스 은행의 돈을 빌리면서 비밀계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귀족과 부자들이 스위스 은행에 몰려가 재산을 맡기면서 스위스 비밀금고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각광을 받았다. 경제가 금본위로 돌아가던 시절이니 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각 나라의 왕들이 신용보증과 무역결제의 기초이다. 그런데 혁명으로 왕이 쫓겨나는 판국이니 왕실 귀족 부자들은 왕 아닌 다른 신용 보증처를 찾아야 했는데 스위스은행이 단연 돋보였던 것.
혁명을 성공시킨 프랑스 부르주아 세력이 프랑스 왕실 귀족 계좌를 내놓으라 하자 스위스는 단연코 거부했다. 이를 욕하는 프랑스 혁명 부르주아들에게 너희들도 별 수 없이 우리가 필요해 질 것이라고 응수했다 한다. 정말 프랑스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스위스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태가 발생했다나.
스위스는 이어 1차 세계대전 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가장 안전한 돈과 은행을 갖고 있는 나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유럽 유대인들의 돈도 스위스 은행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가 세금 확보를 위해 스위스 은행을 뒤지기 시작하고, 독일 나치정권도 유대인 계좌를 눈독들이자 스위스는 1934년 비밀주의를 국법으로 제도화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재산 색출을 위해 고객 정보공개를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했고 대신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나치 정권 역시 고객으로 받아들여 양다리 비밀주의를 지켜나갔다.
비밀보호주의와 관련된 사건들도 유명한 것이 많다. 1943년 스위스의 한 은행원은 74개 비밀계좌의 고객 정보를 나치에 빼돌리다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연합군이 전쟁에서 이긴 뒤 독일 나치 일당의 비밀계좌를 열라고 스위스에 요구하자 어느 계좌인지 정확히 대면 열어주겠다며 버티다 연합국이 파악한 정확한 나치 계좌만 넘겨주고 나머지는 입을 EKE아버렸다. 그리고 나치 잔당이 나중에 나타나 왜 내 계좌를 남에게 열어줬느냐 항의하자 다시 그 돈을 지급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왜 돈의 비밀을 지켜주는가
이런 스위스은행의 태도는 비밀을 지켜주면 결국 그만큼 돈이 돌아오고 들어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는 로마에서 비밀계좌 해외영업을 하던 스위스 은행 직원 2명이 체포됐다. 이탈리아 검찰이 비밀계좌 예금주의 신원을 털어놓으면 면죄부를 주겠다며 타협안을 내놨다. 그러자 한 사람은 고객의 신원을 고해바치고 풀려났고 다른 한 명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비밀을 털어놓고 풀려난 은행원은 스위스법에 의해 5만 스위스 프랑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비밀을 지킨 은행원은 국가적 영웅이 되며 고생한 대가로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2008년 4월에는 스위스 UBS은행 간부가 미국 억만장자 탈세를 돕다가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 고객에 대한 ‘비밀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응답이 80%에 이를 만큼 스위스 은행 비밀주의는 뿌리가 깊다. 은행업에 스위스 경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인구가 760만 명에 불과하지만 은행이 300개가 넘는다. 은행금융업이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11%, 고용시장의 6%를 차지한다. 세금을 피해 스위스에 묵혀두고 있는 해외 예금만 2조 달러(2,5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 은행에게 국제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재정건전성을 높게 유지한다. 자기자본비율이 19%를 넘겨야 한다. 유럽기준은 9%~10.5%.
1990년대부터 스위스 정부와 은행의 비밀주의는 지구촌의 지탄을 받게 되고 서서히 압박에 떠밀리다 2001년 9·11 테러로 궁지에 몰린다. 미국이 테러단체의 돈줄을 쫓다 스위스 은행의 벽에 막히자 문제 제기에 나선 것. 그러나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미국 은행들도 갑부들의 뭉칫돈을 비밀관리해 먹고사니 그랬다. 그러나 서서히 밀리기 시작한 스위스 은행은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결정타를 맞는다. 금융정보의 교환을 기피하는 조세피난처 국가나 비밀계좌 운영 국가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고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국제여론이 기운 것.
그 후 재정이 고갈된 미국도 스위스를 더 몰아붙였다. 미국인들이 해외로 자산을 빼돌려 입는 세수 손실이 연간 1천억 달러(130조원)에 이른다며 탈세 혐의 미국인 5만2천명의 계좌 내역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유럽 나라들도 스위스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며 으르렁거렸다. 은행 측이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공개하려 했으나 스위스 정부가 은행비밀법에 따라 불가하다고 버텨 국제 재판까지 벌어졌다. 스위스의 평판이 나빠지자 스위스 법무장관이 ‘은행비밀주의’가 고객의 범죄행위까지 보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며 물러서 탈세혐의가 있는 4,450명의 명단이 미국에 넘겨졌다.
스위스는 거액의 비밀계좌 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해 세금을 피하고 싶은 부자들을 돕는다. 범죄와 탈법을 숨겨주는 가장 위험한 사업, 그래서 이윤도 크다. 세상의 부패와 범죄에 대해 미필적.잠재적 협력을 하고 있는 셈이고 쉬운 말로 하자면 장물아비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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