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PD수첩 작가를 모두 해고했다. 해고 사유는 누가 봐도 노조의 파업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MBC 시사교양작가들은 노조 파업 지지 의사를 외부에 이런 저런 경로로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MBC는 PD수첩 작가의 해고가 정치적 해고가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공정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해왔다.
작가면 시키는 대로 글이나 쓰라고?
그런데 최근 회사 특보에 실린 시사제작국장의 해고 사유를 보면 “최근에 교체된 작가를 포함해 피디수첩 작가들은 불편부당성과 중립성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노사분규 사태에서 일방적으로 노조의 파업을 옹호하고 노조 측에 가담하여 회사 측을 상대로 싸움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노조 편을 든 것이 불쾌했고 그것이 해고의 사유임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급기야 한국방송작가협회가 긴급 집행부 확대회의를 열어 ‘작가 해고 철회 서명운동’에 들어갔고 MBC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오늘까지 (3일) 작가해고 사태에 대한 MBC의 입장을 정확히 밝힐 것이며 내용을 봐서 오는 6일 김재철 사장을 항의 방문하기로 하겠다고 한다. 또 한국방송작가협회는 해고된 PD수첩 작가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작가를 모집할 경우 응하지 말자는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방송작가는 방송사에 고용된 프리랜서이니 사측이 해고할 지위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회사 차원에서 특정 프로그램 작가를 정치적 이유로 모두 해고해 버리는 것도 부끄러운 처사이고, 프리랜서라지만 1년 고용을 계약한 작가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도 부당하다. 또한 제작자와 작가는 고용의 ‘갑을’ 관계만으로 보아선 안 된다. 엄연히 파트너로 일하는 것이다. 상명하복의 관계나 부속품처럼 여기는 태도는 인식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
방송원고를 쓰는 작가들에게 MBC는 커다란 ‘갑’이다. 더구나 시사전문 작가들에게 일터가 되는 방송사는 몇 곳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들이 하나가 되어 갑을 상대로 싸움에 나선 것도 주목할 일이다.
시대의 어둠에 저항하는 것이 작가정신
굳이 실천문학론을 거론할 것 없이 작가는 작가로서의 시대정신과 책임이 있는 법이다. 이것은 큰 작품을 쓰는 유명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고용되어 있던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대중에게 내보이는 사람이라면 작가, 기자, PD, 비평가, 학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런 가르침은 동서고금 다르지 않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불의를 비판하여야 지식인이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 일 수 없고,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고, 옳은 것을 칭찬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 쓸 자격이 없다”고 일러 가르쳤다. 빅톨 유고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 하는 것이 작가 정신”강조했다.
작가가 불의한 시대에 뛰어든 대표적인 사건은 에밀 졸라의 드레퓌스 구명운동이다. 사건의 배경은 인종차별과 국수주의, 군국주의가 범람하던 19세기 말 프랑스. 극우파와 다수 언론은 애국심을 팔아 여론을 선동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의 보불 전쟁에서 패배해 배상금을 물어주고 알짜배기 알자스-로렌 땅도 내줘 경제난을 겪으며 반독일 정서가 폭발 직전이었다. 하필 유대계 금융자본의 해외투자도 실패해 반유대주의까지 번지는 상황. 이때 프랑스 육군이 독일에 군기밀정보를 넘기고 있는 간첩이라며 유대인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체포해 기소했다. 그러나 스파이는 따로 있었고 드레퓌스라는 죄 없는 유대인 장교가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섬으로 유배됐다. 반독일 정서의 민족주의와 반유태주의가 한데로 합쳐지면서 12년 간 프랑스를 뒤흔든 사건. 드레퓌스는 결백하고 스파이는 따로 있다는 것을 발견한 양심적 인사들이 재심을 요구했으나 진범은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혐오스런 재판결과에 분노한 에밀졸라가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에밀 졸라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여 사건의 불씨를 되살려 냈다. 드레퓌스가 재심을 받고 무죄가 아니라 사면되는 걸로 사건이 엉거주춤 마무리되자 논란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에밀 졸라는 온갖 탄압과 비난, 조롱, 협박을 받으며 가난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 때 남긴 에밀 졸라의 말 “진실은 전진하고 있다,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샤르트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지만 알제리 독립단체의 기금 전달책으로 알제리 독립을 도왔다. 샤르트르의 반국가적 활동이 정보기관에 발각되었고 당시 대통령이던 드골에게 보고되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이 프랑스를 배반하고 알제리를 돕는 건 그냥 둬선 안 되고 당장 잡아들여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측근들에게 드골 왈,
“놔 둬, 그도 프랑스야”.
피카소는 나치 게쉬타포의 감시를 받았다. 게쉬타포 요원이 집을 뒤지다 엽서 한 장을 발견했는데 ‘게르니카’였다. 스페인 내전 때 독재자 프랑코가 바스크 자치독립을 탄압하기 위해 나치의 지원을 받아가며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해 학살한 것을 규탄하는 그림이다.
---- 어? 이거 당신이 한 거요?
“아니죠, 당신들이 한 거죠.”
루마니아 작가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잠수함에 싣고 다니는 토끼 이야기로 작가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강조한다.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토끼가 가장 먼저 느끼며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 작가 역시 시대의 모순과 어두움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며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경고이다.
그런 대표적인 또 하나의 인물이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귄터 그라스. 나치에 부역했었다는 크르트 키징어가 내일이면 민주연합세력의 대표로 수상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전날 그에게 공개편지를 보낸다.
“심각한 전력을 가진 당신이 수상 자리에 앉게 된다면 ..... 도대체 앞으로 학생들에게 역사수업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당신은 정치적 책임만 지면되지만 우리는 그 결과와 치욕을 감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