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08/10 금요일]일생에 멘토가 될 올림픽의 명예를 지킨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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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 편파판정과 판정번복 소동으로 얼룩진 런던 올림픽이 끝나간다. 올림픽 정신이란 무얼까, 금메달과 은메달.동메달의 값어치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등등 물음을 던지기도 했던 런던 올림픽. 그에 대한 답을 적자면 논문만도 수십 수백편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포츠답지 못하다. 스포츠라면 트랙에서 필드에서 몸으로 대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땀과 열정으로 답한 올림픽의 전설들을 만나보자.
올림픽의 전설들 ..... 자신과 올림픽의 명예를 지키다
1932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의 주디 기네스(영국).
오스트리아 선수와 결승에서 만나 팽팽한 대결을 펼쳤는데 심판이 주디 기네스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금메달이다. 그러나 주디 기네스는 상대의 칼에 자신이 2차례 찔렸기 때문에 자신의 승리일 수 없다고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은메달로 메달을 바꿨다. 자신과 자신의 칼과 올림픽의 명예를 지킨 멋진 검객.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캐나다 요트 대표선수인 로렌스 르뮤가 경기 도중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으로 싱가폴 선수들이 바다에 빠지자 싱가폴 선수들을 구하고 오느라 2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르뮤에게는 아무나 받지 못하는 귀하디 귀한 쿠베르탱 메달이 수여됐다.
영국의 조정 대표선수였던 스티븐 레드그레이브도 올림픽 역사에 남을 인물. 당뇨병 말고도 여러 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하지만 올림픽에 5번 참가해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은퇴 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런데 마지막 성화주자로 이번 올림픽에 한 번 더 참가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 최고의 영웅이라면 역시 다리절단이란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 육상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육상경기에 참가한 의족의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 공화국)를 꼽고 싶다. 400미터에서는 결승진출을 못하고 준결승 진출로 물러서야 했고, 1600미터 이어달리기에서는 동료가 달리다 넘어져 부상을 입는 바람에 뛰어보지 못하고 경기를 포기했지만 그의 인간 승리와 스포츠 정신을 어찌 메달로 잴 수 있겠는가.
장애인 메달리스트로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선수는 미국의 레이 유리이다. 그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했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 높이뛰기, 삼단뛰기, 멀리 뛰기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3개를 하루에 모두 따낸 것.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도 출전 역시 금메달 3개를 땄고, 1908년 런던 올림픽에 또 출전해 금메달 2개를 더 따낸 엄청난 선수. 역대 모든 올림픽 참가 선수를 놓고 따져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선수가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면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올림픽의 감동은 올림픽이 끝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프로권투 헤비급의 최강자(4개 기구 통합챔피언)로 등극했던 우크라이나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권투 헤비급 선수 출신이다. 클리츠코가 올해 3월 자기가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아 100만 달러, 11억 원에 팔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열렸던 경매에 불우청소년 돕기 자선기금을 마련하고자 내놓은 것이다. 100만 달러에 금메달을 산 부자는 존경하는 스포츠 영웅과 좋은 일에 함께 한 것으로 만족한다며 금메달을 넘겨받자마자 곧 바로 클리츠코에게 되돌려 줬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스포츠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아프리카의 에킨슨이다. 지금으로부터 7 ~ 80년 전 쯤에 활약한 선수인데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30년 전 쯤 스포츠동아에 실린 기사내용이 유일할 것인데 지금은 언론사 창고 속 박스에서 유물이 되어가고 있어 다시 찾아보지 못했다.)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하자면 이러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킨슨이라는 이름의 육상 선수는 영국인 부모를 둔 백인으로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초원을 달리며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아프리카 지역의 육상대회를 휩쓸고 급기야 유럽에까지 이름이 알려져 스카웃 제의도 있었지만 자신을 길러 준 아프리카를 위해 뛰겠다며 거절했다.
그러다 드디어 세계대회에 단거리 육상 아프리카 대표 선수로 출전했고 결선에 올랐다. 예선 성적이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나 금메달은 이미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 하필 비가 내렸고 땅이 젖어 경기가 연기되었다가 땅이 마른 후 결승전을 치르게 됐다. 예선 1위이던 에킨슨은 1코스를 배정받아 트랙에 나섰는데 문제는 1코스 옆이 축구장 잔디밭이라 1코스의 트랙은 겉으로만 말랐지 속은 질퍽거렸다는 것. 그러나 경기는 시작됐고 질퍽이는 땅에서 뛴 에킨슨은 메달을 따지 못하고 조용히 경기장을 떠났다. 그러나 그 다음 경기들을 치르려다 1코스 트랙이 질퍽거리는 걸 발견한 경기위원회는 즉각 남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사람들은 몇 번 씩 스타트 연습을 하며 1코스를 달려본 에킨슨이 왜 코스가 질퍽거리는 걸 몰랐을까 의아했지만 선수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곧 그 소동을 잊었다.
그로부터 1년 쯤 지나 다른 곳에서 에킨슨을 만난 한 신문기자가 그 때의 상황을 물었다.
--- 땅이 질퍽거리는 걸 몰랐습니까?
“아니요 연습하는 과정에서 바로 알았습니다.”
--- 왜 경기를 중단시켜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바깥 쪽 빈 코스로 얼마든지 바꿔줄 수 있었는데요?
“스포츠는 남과 똑같은 조건을 부여받거나 메달을 따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자기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가 스포츠의 시작이고 본질입니다. 어떤 코스가 주어지든 내 앞에 가로놓인 장애와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 뿐이죠. 그게 스포츠입니다.”
자기 운명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운명과 함께 최선을 다해 한계에 부딪혀 가는 당당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그 겸허함 ..... 그러나 그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메달을 따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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