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는 국기게양대가 있다. 국기게양대의 디자인과 제작을 맡았던 사람은 작가 홍 모 씨. 홍 씨는 국기게양대의 좌대 격인 바닥을 원형 태극문양으로 디자인하고 건곤감리를 배치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도의 형상인 호랑이를 세웠다. 그런데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독도에 독도표지석(이명박 대통령의 친필이 들어감)을 설치한다며 그 국기게양대 작품을 작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철거해 버려 논란이 일고 있다. 호랑이는 떼어내 한 쪽 구석에 처박아 뒀고 태극 문양의 위치도 무단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자 작가 홍 씨는 독도표지석을 세우는 걸 반대하지는 않는데 자신의 작품을 무단훼손하지는 말아달라고 청원의 글을 올렸다. 차라리 자신의 작품 전체를 모두 철거해 돌려달라는 요구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훼손된 채 방치된 것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고 호소하고 있다.
엿 주고 바꿨으니 엿장수 맘대로?
비슷한 사건이 2010년에도 있었다.
휴전선 도라산 역 통일문화광장에 벽화 15점이 그려져 있었다. 통일부의 요청으로 원로작가 이반 씨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통일을 기원하며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만해 한용운의 ‘생명·인간·자유·평화·자연사랑’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더니 통일부는 ‘민중적이며 어둡고 칙칙하다는 이유로 2010년 벽화에 물을 뿌려 벽에서 떼어냈다. 물론 작품은 상당 부분 훼손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백두산 천지 벽화가 걸렸다. 관계 당국은 ‘어둡고 칙칙하다는 건 오가는 사람들의 평이고 국가예산을 들여 국가소유의 벽에 그린 벽화이니 작가의 동의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법원도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작가 이 씨는 “국민의 한 사람인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나라가 지구상 어느 문명국가에 있겠느냐, 이게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국격이냐”며, “이 일은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후퇴의 시대에 살고 있는 모두의 문제’로 여겨 시대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 씨는 민중화가가 아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88 서울올림픽 공식예술판화 포스터를 제작한 작가이다. 이것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반증하는 것일까? 재판부는 그림의 소유권만 따졌다. 정부가 작가에게 저작물 철거에 동의를 구할 의무는 없고 예술의 자유나 인격권을 침해한 걸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부나 법원의 판단은 내가 그림을 한 점 샀지만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리거나 불태워 버린다 해도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은 돈 주고 샀다 내버려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애완견은 어떨까? 예술작품은?
이에 대해 벽화의 소유권은 정부에 있지만 인격저작권은 여전히 창작자에게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작가의 인격이 예술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면 소유권자라도 마음대로 고치거나 공표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특히 민족통일의 상징인 도라산 역 광장에 걸려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는 작품, 독도에 설치돼 조국을 상징하는 작품이라면 소유권을 떠나 공공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견해도 있다.
나라가 온전해야 예술도 온전하다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2년, 정부기관이 맘대로 뜯어내는 데 2시간 ..... 예술에 무지한 공무원의 횡포인지 과잉충성에 의한 몰상식인지 명확히 가려낼 수 없지만 작가는 지금도 작품의 부활을 꿈꾸며 다시 작업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들의 기준과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건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국가권력에 의해 벽화와 조소 작품이 철거된 이 사건들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권력에 의해 침해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결코 과장되거나 피해망상이 아니다. 최근에도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퇴출시키는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한국작가회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에 나서 정부로부터 한 푼의 보조금도 받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폭로했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괴문건도 이런 맥락에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정 의원은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2008년 8월에 만든 문건으로 좌파로 분류한 예술 인사들과 단체를 지속적으로 청산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폭로했다.
작가 이반 씨는 벽화 사건 이후 이렇게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내가 서 있는 땅이 온전해야 그림도 온전할 수 있구나”.
예술은 그 표현방식이 어떠하든 인간 삶에 대한 성찰과 애정에서 비롯된다. 결국 예술에 대한 예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이어져 있는 것. 정치권력의 취향에 의해 벌어지는 예술에 대한 횡포는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의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