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08/29 수요일]태풍 앞의 기자들, 명성에 춤추고 명령에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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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방송사들의 이번 태풍 현장 보도가 너무 작위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기자는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상태에서 태풍 ‘볼라벤’의 강력함을 생생하게 전하기도 했다.
28일 오전에 태풍이 접근한 목포지역 상황을 전하면서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고 등장한 기자는 “ ...... 보시는 것처럼 이곳 목포에는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로프에 몸을 묶어야만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그 종편채널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신문은 ‘눈물 나는 기자정신’이라며 자기네 방송을 칭찬 선전하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과연 아슬아슬한 위험 상황에서 생방송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밧줄로 몸을 묶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 곳에 기자를 세워놓아야만 하는 걸까? 그것보다는 그런 상황을 객관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다른 방책을 마련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밧줄로 몸을 묶은 해당 기자 바로 앞에서 카메라까지 짊어지고 촬영하는 보도영상 기자란 존재이다. 그도 역시 밧줄로 묶고 카메라를 짊어지고 있었나? 밧줄의 위치도 문제다. 몸이 아니고 목에 밧줄을 걸고 있어 바람에 몸이 한쪽으로 떠밀리면 자칫 목이 졸릴 처지이다.
2.태풍에 춤추는 기자들
다른 방송 보도에서도 태풍 현장에 출동한 기자 대부분은 비와 바람에 몸을 가누기 벅차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앞을 잘 못 보는 상황에서 현장 생방송을 하느라 고생들 했다.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입을 제대로 못 벌려 발음이 부정확해 내용 전달이 불분명할 거라면 정상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장소로 위치를 옮겨 할 일이다.
작위적인 모습도 보였다. 기자의 모습이 등장하는 처음 한 두 문장은 몸이 마구 흔들리고 말이 꼬이다가 카메라가 배경 쪽으로 돌아간 다음부터는 발음이 온전해 진다. 어떤 기자는 시작과 함께 바람에 휘날리는 중이라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춤을 추어 놓고는 곧바로 반듯이 서서 현장 보도를 했다. 충분히 견딜만한 바람에 괜히 오버해 춤을 춘 것이다.
트위터 상에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비바람 속에서 꼭 기자가 인증샷을 찍으며 보도해야만 하는 걸까?? 강한 비바람에 서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기자들 할리우드 액션 너무 표 난다. 그리 호들갑 난리 브루스를 추니 괴담이 나도는 거다. 연기도 못하는 기자들 보니 토할 것 같다”
“기자가 바람에 휘청거리면서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리포트하는 걸 보면 ‘사실 보도’보다는 ‘뉴스쇼’를 위해 "연출"을 하는 듯하다. 우리 방송이, 우리 기자가 더 위험을 무릅쓰고 보도한다고 내세우는 거냐. 지나친 흥분과 과장은 뉴스가 아니다”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 순서를 기다리다 머리와 어깨 위로 눈이 소복히 쌓여 눈사람이 되었던 박대기 기자와 비교도 한다. ‘여성판 박대기 기자 등장’ ..... 이런 식의 찬사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비판도 있다.
‘박대기 기자 때문에 기자들 목숨이 위태롭게 됐다.’
‘이제 막무가내내로 따라하는 예능 기자는 그만 그만’
‘박대기 기자 따라하며 나름 유명세 잡겠다는 속셈들인가’
그러나 분명 박대기 기자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고 처음부터 기획연출된 작위적인 이번 태풍 보도와는 처지가 다르다.
3.인기와 명성에 춤추는 기자들
뉴스 보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쉬운 예로 일본의 현장 취재 기자들이 헬멧까지 갖춰 쓰고 보도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위험한 곳에 접근을 삼가고, 위험한 곳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면서 보도해야지 위험한 곳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처럼 상황을 과장해 보여주는 것은 보도 저널리즘이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담배를 마구 피워대는 장면을 삼가하고, 급하게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장면에서도 꼭 안전띠를 매도록 연출한다. 이런 것이 방송의 사회적 책임인 것이다. 재난보도를 충실히 하다보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고, 그런 노력이 칭찬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사끼리 기자끼리 우리 편이 더 위험하게 접근했다고 경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경쟁이 다음 태풍 때 더 과열되고 그렇게 진행되다간 마치 철길 위에서 기차가 다가올 때 누가 더 늦게 뛰어내리나로 승부를 가르려는 아이들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기자는 인기와 명성으로부터 멀어야 한다. 방송사마다 위험과 수고를 무릅쓰고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 이유는 그것이 저널리즘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훌륭한 전통이다. 그러나 기자는 사건을 취재하는 것이지 사건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 기자가 화면에 등장할 자기 모습을 선정적으로 연출해 가며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고 오락 프로그램 출연한 게스트처럼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
그것을 허용하고 종용하는 방송사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자정신을 팽개친 채 정치권력과 금권에 맹종해 온 이 땅의 방송 저널리즘이다. 올곧은 방송인들을 해고하고 징계한 방송사들이다. 고작 태풍 보도 현장에서 젊은 기자들을 위험 속으로 내몰며 이것이 저널리즘이라고 거드름 피운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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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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