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이다. 콧물이 흐르더니 감기몸살에 걸렸다. 이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서 어떤 사람이 콧물이 감기의 원인이라고 믿는다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옳을까? 이런 걸 논리학에서 ‘결합효과의 오류’라고 부른다. 무언가 감기에 걸리게 하는 원인이 따로 있다. 그 원인으로 콧물도 나고 기침도 나고 몸살도 걸린다. 그런데 감기의 원인이 되는 그 무언가는 빼버린 채 콧물과 감기몸살을 원인과 결과로 이어 붙인다. 이것이 ‘결합효과의 오류’ 또는 ‘공통원인 무시의 오류'이다.
까마귀가 날 때마다 배가 떨어진다. 까마귀가 날면서 배나무 가지를 흔들긴 했으니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배나무가 병충해에 걸려 배들이 겨우 매달려 있고 수시로 가지에서 떨어진다면 까마귀로서는 억울하다. 역시 결합효과의 오류이다.
죄다 니 탓이야, 근본적 귀인의 오류
사회현상 속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국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는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 어떤 여성이 남편 몰래 애인을 기다리는 내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잭 니콜슨과 제시카 랭이 주연한 이 영화는 나이 든 남편 몰래 떠돌이 부랑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파멸이 줄거리였다. 제목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영어 원제목이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이다.
(혹 오해가 있을까 싶어 조금 자세한 설명을 붙인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되려 할 때 우편배달부들의 전국체신노동조합이 제목을 바꿔달라고 강력히 요청해 제목이 바뀌었다. 우편배달부에 대한 잘못된 상상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목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바뀌었다. 제임스 케인의 원작 소설에는 남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 음모를 꾸민 여인이 자기 집을 담당한 우편배달부에게 보험회사 우편물이 있거든 꼭 벨을 두 번 울려달라고 부탁한데서 영화 제목이 그리 된 것이다. 우편집배원들은 보통 벨을 두 번 누른다. 한 번 눌렀는데 반응이 없다고 바로 자리를 뜨진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누른다. 그렇다고 세 번 네 번 누르기에는 짐도 무겁고 무지 바쁘다.)
본론으로 돌아가 우편집배원, 우편배달부는 그런 오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차별과 오해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로 ‘~ go postal’이면 ‘우체국에 가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미쳐 날뛰다’라는 뜻의 속어로 쓰인다. 포스트맨은 건달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 비디오, 소설 등에는 우체국 직원이 무자비한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걸핏하면 등장한다. 물론 예전에 우체국에서 총기난동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고 우체국 직원이 나쁜 짓을 저지른 적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체국에서 범죄가 벌어지는 확률은 일반 편의점보다 훨씬 낮은데도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장면을 떠올리고, go postal 미쳐 날뛰다 .... 라는 속어를 떠올리며 우체국을 범죄와 쉽게 연관 지어 생각한다. 우체국에 가면 사람을 분노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울화가 치민다고 여긴다. 범죄가 벌어지는 숱한 이유, 각각의 범죄가 갖고 있는 배경과 특수한 상황들을 일일이 파악하려니 머리가 아프고 복잡하다. 머리 안 아프도록 쉽게 생각하자. 그래 아무튼 우체국은 문제가 많아, 이렇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들이 많을 것이다. 이 나라는 늘 그 모양이야, 정치인들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그게 다 대통령 잘못 뽑은 탓이야 ..... 원인을 간단하게 편하게 하나로 몰아감으로써 복잡한 사유로부터 빠져나가려는 본능이다. 사회심리학에서 ‘근본적 귀인의 오류’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른 근본적 귀인의 오류들을 떠올려 보자. 시어머니 며느리 관계는 다 그래. 남자는 죄다 짐승, 여자의 마음은 못 믿어 ...... 모두 다 생각을 쉽게 하고 결론을 빨리 맺어 두뇌의 피로를 덜고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인간심리이자 ‘근본적 귀인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명제이다.
10살도 안 된 여자 아이를 성추행하고, 밤길이나 숲길에서 여성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인간들? 사람들은 ‘본래 미친 놈들이었겠지’라고 간단하고 명확하게 원인을 결론짓기도 한다. 이것도 근본적 귀인의 오류이다.
그 범인들 중 동네에서 정상을 벗어난 미치광이로 낙인 찍혔던 사람은 드물다. 동네 아저씨이고 양아버지이고 옆 마을 청년이고 학교 동료들이다. 이런 저런 고통으로, 사회적 불만과 소외로, 가치관의 붕괴로 헤매다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이웃이 싸이코패스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나 자신이나 내 자식도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무섭고 골치 아프니 본능적으로 피하려 한다. 애당초 미친 인간들이라 그랬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은 거기서 너무 멀다.
인간이 아니라 세상이 포악해지고 있다
사람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리 해석하고 정책을 짜려면 복잡해지고 해결책이 바로 안 나온다. 그래서 미친 놈, 불량배, 위험분자들이 필요해진다.
정부와 경찰이 바로 그렇다. 대통령이 흉악 범죄의 원인이 뭐냐 경찰에게 물으면 ‘경제가 나빠져 그렇고, 정치가 희망을 못 준 것도 원인이고, 사회복지 안전망이 허술해 그렇고, 학교교육이 무너져 그렇고, 사회에 부도덕한 포르노물과 룸싸롱이 번창해 그렇고, 방송마다 넘쳐나는 막장프로그램들 때문이고,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이 온갖 비리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 그렇다’고 해야 하는데 대답은 엉뚱하다. 불심검문이 부족해 그렇고 전담팀을 저쪽에 둘 걸 이쪽에 두어서 그렇다고 한다. 정부도 경찰의 말을 받아 경찰이 대책을 열심히 마련하고 있다며 슬그머니 넘어간다.
국민도 쉬이 속는다. 성범죄자와 흉악범들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래 경찰이 미리 잡아들이면 간단하지 않겠어?’..... 라고 착각한다. 근본적 귀인의 오류이다. 불심검문으로 성욕을 체크해 사전에 잡아들인다는 이야기일까? 얼굴만 딱 보면 일 저지를 인간인지 짚어낼 수 있다는걸까? 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사라진 불심검문이다. 부활시키면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학교폭력전담팀, 주취폭력 전담팀, 성폭력 전담팀 ..... 지금까지 만든 전담팀들을 봐도 인간이 포악해지는 게 아니고 환경이 포악해지고 있음이 읽힌다.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 더 솔직해지라, 그래야 바른 해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