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전에서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는 것 중 하나가 핵심 구호이다. 이것도 해준다, 저렇게 하겠다 등 번잡한 약속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핵심을 짚어내는 한 마디. 모든 걸 한 마디로 웅변해내는 핵심 키워드.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쉽지만 많은 메시지를 응축해 담고 있는 강력한 구호가 필요하다.
역대 정권이 선거를 통해 내건 구호들은 아래와 같다.
박정희 - 잘 살아보세,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자.
전두환 - 정의사회 구현
노태우 - 보통 사람의 시대
김영삼 - 신한국 창조
김대중 - 준비된 대통령
노무현 - 사람 사는 세상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은 구호로서는 잘 만들어진 꽤 쓸만한 구호였다. 강한 나라 만들어 잘살게 해준다는 내용을 숫자 속에 담아 747이란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이미지와 연결시켰다. 마치 나라가 비약할 듯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치장일 뿐 현실적으로는 그에 합당한 철학도 실천력도 현실분석도 없어 실패했다.
북한 김일성 시대의 구호 ‘기와집에 쌀밥 먹게 해 준다’도 그럴 듯하게 잘 만든 구호이다. 그러나 국민을 도구 내지는 종으로 여기는 세습독재 아래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는가. 아무 의미 없다.
쌀밥 먹고 달나라 가자!
흔히 가장 멋졌던 정치 구호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우리 이제 달나라로 갑시다”를 꼽는다. 1961년에 내놓은 케네디 대통령의 관련 연설들을 요악하면 이런 내용이다.
“우리 이제 달나라로 갑시다. 달에 가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갈 것입니다. 우리 미국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미국은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케네디의 ‘달로 갑시다’는 이후 유행어가 되었다. 미니시리즈 ‘From the earth to the moon’, 팝송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케네디 우주센터 등등 .....
케네디 대통령이 그냥 큰소리 친 것은 아니다. 왜 수많은 정치 사회 복지 문화 이슈 중에서 하필 우주개발과 달 탐사를 외쳤을까? 그것은 그 안에 미국의 과학과 경제, 사회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뤄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나라에 로켓을 착륙시키고 또 무사히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선 우주과학기술이 발달해야 한다. 우주과학기술은 종합과학기술이다. 엔진, 연료, 기계설비, 도장, 섬유, 식량, 전기전자, 항공, 유리, 전자계산, 레이더 등 미국 내 모든 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이미 소련이 미국보다 우주개발에서 훨씬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자존심과 자유진영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달나라에 간다는 구호가 범국민적으로 먹히면서 미국은 한참 앞서 있던 소련을 제치고 달에 먼저 도착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였다. 우주과학기술이 전체 과학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며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달나라 선언을 할 때만 해도 미국의 항공우주국조차 과연 10년 안에 가능할까 할 정도로 엄청난 계획이었지만 미국은 소련의 100배에 이르는 투자개발비를 퍼부어 성공으로 이끈다. (소련 2억 달러 미국 250억 달러. 당시 대한민국 수출 규모가 1억 달러).
오바마도 케네디를 모방하려 했는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2030년까지 인간을 화성에 보내겠다!"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성 담기지 않아 큰 효력 발휘 못하고 있다.
21세기 문제는 그게 아니야, 바보야
빌 클린턴이 최친 구호도 상당히 먹혔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최고로 유행한 구호이다. 이 구호를 앞세워 빌 클린턴은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누르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표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빌 클린턴은 지난해 말에 2012년 올해의 미국 대선을 겨냥해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 제목은 Back to the Work - ‘진짜 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
문재인 후보 캠프가 내놓은 “일자리 혁명”. (문재인 후보가 일자리혁명 위원장을 직접 맡고 있다). 클린턴이 힌트를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해 아래 새 것은 없는 법이라 생각되고 나름 괜찮게 만들어졌다는 평가.
안철수 후보의 핵심 구호는 뭘까? 정치 쇄신? 무소속 대통령?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 기성 정치인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참 정치를 정치권 밖에서라도 구해보려는 국민의 갈망을 등에 업고 있으니 정치 구호를 내놓는 건 당연하다. 더 명징한 힘 있는 구호가 만들어져 나오길 기다린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핵심 구호는 뭔가? “경제민주화!”. 무슨 말인지는 다들 알겠지만 감동적이지 않다. 더구나 캠프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있는 구호여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 좋은 거 뭐 없을까?
입에 착착 붙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메시지, 그리고 그것이 구체화된 청사진, 그 다음은 실천하리란 믿음 .... 이것을 갖춰준다면 “대통령 되는 것 그리 어렵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