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스프에서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식약청 책임자의 발언으로 시끌벅적했다. 그러자 제조회사 측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의 극히 미미한 양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고기 구워 먹을 때 발생되는 노출량이 라면의 노출량보다 1만6천배 더 높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라면 제품들은 4월과 6월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니 유통과 소비가 빠른 제품임을 감안하면 이미 다 끓여 먹었거나 진열대에서 내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안하고, 대만과 홍콩의 한국 라면들이 수난을 당하고, 라면업계 전체와 수프 재료인 가쓰오부시로 불똥이 튀고 있다.
조리방법에도 신토불이가 있다
벤조피렌은 육류를 굽거나 연기로 그을릴 때 발생한다. 라면의 1만6천배라는 수치의 신빙성문제가 있지만 고기를 태우면 심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도대체 그런 걱정 다 하다보면 뭘 먹으라는 거냐는 사람도 있고 검게 탄 부분을 열심히 잘라내며 먹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신토불이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신토불이는 먹을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먹는 방식도 신토불이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과식을 피하라고 충고해 왔다. 그리고 지나친 향료나 기름진 음식을 고량진미라 하여 삼가도록 했다. 음식이 곧 약이 되고 독이 된다는 생각에서 바이오 식탁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 전통 속에서 우리 음식조리 문화는 푹 삶거나, 뜨거운 열로 고거나, 증기로 찐다. 그리고 효모로 띄우는 방식이 많다. 조리방식 상 느림의 습식문화이다. 반면에 서구식 조리방법은 센 불로 빠르게 구워서 내놓거나 튀기거나 연기로 씌우거나 태우는 방식이다. 속도를 빨리하는 건식문화다. 그러나 우리의 조리문화는 서구식 조리에 밀려났고 그 이후 우리 식탁에는 여러 부작용과 논란이 일었다. 먹는 것뿐이 아니다. 주거환경과 방식도 마찬가지.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는 흙집이 많았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으로 흙집과 초가지붕이 낡고 가난한 것의 상징이 되면서 모두 허물어버리고 콘크리트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산과 들을 파헤치고 시멘트, 아스팔트로 덮어버렸다. 흙 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 파괴한 환경과 우리가 저버린 전통방식으로 인해 환경의 역습을 받고 있다. 실내공기, 새집증후군, 향수 알레르기 ..... 이것들은 우리가 수많은 화학물질에 늘 노출되어 살면서 그것들이 몸속에 축적될 경우 발생하는 화학물질과민증이다. 증상은 두통, 속 매스꺼움, 알레르기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각종 암 등 질병도 늘어만 가고 있다.
세상의 과학기술들은 돈벌이 또는 힘을 목표로 개발된다. 그러다 부작용이 커지면 그때서야 인간을 생각한다. 인간을 위해 개발된 기술도 돈벌이와 힘을 위해 쓰이면서 인간을 다시 위협한다. 전쟁은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전쟁으로, 전쟁 후의 가난으로 아빠엄마 모두 집을 비워야 하니 아이들을 위해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해졌다. 냉동햄버거, 냉동감자칩이 나오고 적군 비행기를 탐지하는 레이더라는 전쟁기술을 빌려다 전자레인지를 개발했다. 그 외에도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를 덮어씌워 소금기와 습기로부터 보호하던 비닐물질은 식품표장용 랩이 되었고, 원자폭탄을 만들던 원자로를 포장하던 테프론은 프라이팬 코팅물질이 되기도 했다. 오늘은 일단 조리도구는 빼고 먹을거리만 따져보자.
부대찌개의 원조가 전투식량?
고기를 훈연하고 조리해 만드는 것이 햄이고 햄은 깡통 속으로 들어가 전쟁터로 보급됐다. 이것 한 통에 들어있는 지방과 나트륨은 어른 하루 섭취량의 1/3이나 된다. 자주 먹으면 당연히 혈압이 오르고 비만에 걸린다. 왜 이런 걸 만들어냈을까? 전쟁용으로 만든 것이다. 전투식량이니 칼로리도 높아야 하고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화학물질로 처리해야 했다. 여기에 쓰여 온 합성첨가물은 합성아질산나트륨과 합성착색료, 합성착향료, 합성보존료, 전분, 에리쏘르빈산나트륨 등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이것들을 상당수 뺀 제품도 등장했음을 밝혀둔다.)
현대사에서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가 이런 음식들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 국내에서 팔리던 콜라가 전쟁터로 갔다. 유럽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미군병사는 번거롭게도 물을 정수해 마셔야 했다. 그것도 급히 약으로 정수한 물을 마시면 그 맛은 수영장 물을 퍼마시는 것과 맛이 비슷하다. 그러니 치열한 전투 후 살아남아 쭉 들이키는 물보다 값싼 콜라 한 잔의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미국의 콜라는 그렇게 전쟁터로 갔고 전쟁 중 전 세계에 퍼졌다.
그리고 오렌지 쥬스도 전쟁을 위해 개발된 식품이다. 오렌지즙을 가루로 만들어 분말쥬스로 만들었다가, 다시 농축액 쥬스가 되고, 요즘은 생오렌지쥬스로 발전했다. 공정과정에서 손실된 맛을 보충하고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감미료, 보존료 등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 만들었다.
냉동감자튀김은 뜨거운 기름이 물분자를 증발시키면서 그 물이 있던 자리에 기름이 배어들어가 맛이 좋아지는 것인데 이 튀김 기술은 라면이 된다.
식탁은 정치이자 윤리이다
전쟁을 위해 발전한 식량기술은 전투만을 목표로 한다. 새로운 방부제, 첨가물, 향료, 색소를 마구 쏟아 부어 만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식품과 식품기술들은 전쟁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햄버거.냉동피자.감자칩 등 튀기고 굽는 방식의 패스트푸드들은 그렇게 아시아 아프리카로 퍼져나가며 그 나라 전통방식의 건강한 음식들을 소멸시켰다. 전쟁 후도 현대인이 바쁘다며 자꾸 재촉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니까 식품회사들은 패스트푸드, 냉동식품을 개발해 내놓았다. 그 안에는 화학물질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거기에 맛을 더하려면 튀기고 구워야 하는 악순환이다.
어떤 물질이 얼마나 해롭고 어느 선까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가에 대해서 연구하고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과제도 있다. 십년 이십년 꾸준히 그 물질들을 섭취할 경우 그 물질이 사람 몸속에 쌓이면서 벌어지는 현상과 그 물질들끼리 만나 결합할 경우 생기는 현상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위험한 물질에 의존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익과 편리만 따진다. 이익과 편리를 위해 사람 몸에 화학물질을 섞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물질로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다 노동자는 병을 얻는다. 이런 비극에서 벗어나는 길은 ‘식탁이 정치외교이며 윤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때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