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2012/12/25 화]캐럴도 없고 예수도 없고 정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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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틀어대는 사랑 타령의 팝송만 가득하지 우리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영성을 담은 캐럴은 이미 듣기 귀하다.
캐럴도 없고 예수도 없고 정의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산타 이미지가 코카콜라 광고에서 시작됐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 그렇다면 루돌프 썰매는? 8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미국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Clement Moore)가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에서 루돌프 썰매를 등장시키면서 굳어졌다. 이때까지도 산타는 늘씬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그러다 19세기의 만화가 토마스 나스트가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라는 잡지에 산타클로스를 중국의 포대화상처럼 뚱뚱하고 맘씨 좋은 할아버지로 그린 것이 오늘의 모습으로 알려진 것.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뒤 국민 전체에 전파하는 방법을 고심하다 전통축제와 접목시키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12월 21일에서 31일까지 성대하게 열렸던 ‘사투르날리아’라는 축제. 당시 농경문화가 주축이었던 로마에서 동지(冬至)를 맞아 새 봄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축제이다. 이 축제 기간 중에서도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으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 하여 특별하게 기념하던 날이었다. 또한 태양신인 ‘미트라’의 축일도 이 날이었다. 그래서 이 축제기간과 축제일에 기독교를 접목시켜 국민의 거부감을 피해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가려는 정치적 책략이 작용했던 것.
20세기의 대표적인 정치적 이용 사례는 나치 독일이다. 나치는 1933년 집권한 이래, 독일이라는 국가를 자신들의 이념에 충실한 국가로 개조하려고 했다. 기독교도 나치에 충성하는 제국교회로 바꾸고 크리스마스도 개조해 자기네 종족의 기념일로 재창조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던 선물은 12월 6일, 게르만족 최고의 지배의 신 오딘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신화로 대체했다. 12월을 크리스마스보다는 전사한 병사들과 옛 조상들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부게르만 문화권에서 행해지던 ‘율페스트’라는 축제가 있는데 겨울철에 촛불을 켜고 촛불이 태양을 자극해 겨울을 빨리 몰아내고 봄을 앞당기도록 기원하는 축제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율페스트 축제와 크리스마스를 접목시켜 촛불을 켜고 제국건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제국의 영광이 이뤄지도록 기원하는 걸로 크리스마스를 개조했다.
그 다음이 스바스티카의 활용이었다. 힘과 지배를 상징하는 스바스티카는 발전소를 상징하기도 하는 표시였으나 히틀러의 나치는 이것을 하켄 크로이츠라고 부르며 크리스마스 과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에 널리 사용하도록 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달리는 별은 반드시 스바스티카로 대체시켰다. 꼭지점 5개인 오망성은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들의 별이고, 꼭지점이 6개인 육망성은 유대인들의 별이어서 싫어했던 것.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에는 이밖에도 나치독일 깃발인 프로이센 삼색기, 철십자도 애용되었다. 캐롤도 제국주의와 히틀러, 나치를 찬양하는 것으로 가사를 바꿔 부른 것들이 많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자 미상의 가난한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자.
산타에 눈물
올해부터
딸아이는 산타를 믿지 않기로 했다
하긴
지난 몇 년 째 다녀간 흔적도 없으니
어른도 안부가 끊기면 서운한 세상인데
어린아이에게 무심한 산타가 무슨 기대걸이가 되겠는가 ?
북극 어디쯤 폼 나는 벽난로 앞에서
선물 꾸러미 꾸리고 있어야 할 산타는
올해도 세상 변두리에서
내일 막을 은행잔고를 걱정한다
하늘을 나는 썰매는 경매 처분 당했고
루돌프의 잘 자란 뿔은 내다 팔아 사슴 구실도 못한다
산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지나오던 북극에서
쫓겨난 지도 오래
빨간 털옷은 여기저기 기워져
남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노래 부를 때
내리는 눈발이 원망스럽다
허연 수염은 가꾸지 못해 산발이 되고
안경은 도수가 맞지 않아 더욱 침침해져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몇 년 전 부터 주머니에 넣어둔
갖고 싶다던 선물 목록
백번 사줬을 그 간단한 선물들을
올해도
산타는 사주지도 못하고 훔치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병원에 한번 데려가지 못해
코 등에 윤기조차 사라진
루돌프의 병든 몸을
딸아이처럼 더듬으며
운다
크리스마스에
정작 산타는 큰 몸을 들썩이며 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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