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2013/01/15 화]인수위 기자가 1천명, 민생에는 몇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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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드나들며 취재하는 기자는 모두 몇 명일까? 등록된 기자만 983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수위원회에서 나오는 기사는 특별한 것이 없다. 업무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함구령을 내린 이후 대변인이 발표하고 설명하는 내용 그 외의 것은 보기 힘들다. 모두가 똑같이 받아 써내는 기사에 수백 명이 몰려 북적댄다니 국가적 낭비이다.
인수위 취재기자 1천명에 달랑 그거?
인수위 측에서는 정부 각 부처 보고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 하며 보고내용을 대외비로 분류하고, 보고서 내용이 유출될 경우 처벌받는다는 보안각서도 제출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인수위가 보고내용 유출했다고 공무원을 징계하고 처벌할 수 있는 건가?
덕분에 기자들은 건질 게 없다. 인수위원들이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고 마주치면 입을 꾹 다문 채 도망가 버린다. 기자 전화 안 받기도 뭐하고 받으면 입 다물기도 뭐하니 비서에게 전화를 맡겨버린 인수위원도 있다. 기자들로서는 인수위원들 출근길, 점심식사 루트를 가로 막고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오는 것은 없다. 기자들을 피해 사무실로 뛰어가다가 구두 한 짝이 벗겨진 인수위원도 있고 기자들을 피해 급히 차를 몰다 주차 브레이크도 안 풀고 차를 몰아간 인수위원도 계시고, 인수위원 쫓아가다기자들끼리 뒤엉켜 넘어지기도 했단다. 기자들이 쓰는 기사가 이런 것들이다. 이러니 기자 수백 명이 우글대봐야 뭐가 나오겠나. 그저 새로 권력을 쥔 집권자 측근들에게 얼굴 도장 찍기이고 그들의 입 하나만 바라보며 우왕좌왕 몰려다니는 셈이다.
저 기자들을 어쩔 것인가? 보도자료와 발표내용을 베낀다는 것은 이 나라 저널리즘의 시각과 깊이가 보도자료의 시각, 보도자료의 깊이에서 머무르고 만다는 걸 의미한다. 왜 국민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적어다 인수위원회에 전하려 하지 않는가. 거기 인수위에 오늘 몇 백이 모여들지 모르지만 민생의 현장으로 가 죽어라 뛰는 기자는 오늘 과연 몇 명일까?
공사에는 2년도 안 걸렸는데 공사 끝나자마자 수리를 시작해 수리하는데 1년 넘게 걸리고 있는 4대강 사업, 국정원 직원과 여당 측이 연루된 불법선거운동 의혹, 국정원의 미행 사찰 공포, 부정개표 의혹의 해소대책, 노조파괴와 노동자들의 죽음, 공공부문의 민영화로 포장한 사기업화,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살리기 ..... 이렇게 즐비한 현안들을 놔두고 새로운 집권자 인수 사무실에서 도장 찍고 한마디라도 얻으려 바글대는 기자들을 어쩔 것인가?
하이데거 말대로 언어는 영혼을 담는 집이다. 자기가 쓰는 한 줄 한 줄이 자기 영혼이 된다. 방송기자연합회에서 방송저널리즘의 실종을 걱정하며 책을 한 권 펴냈다.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라는 책이다. 아무 생각 없이 권력자만을 쫓는 한 대목을 소개해보자. 불이 켜진 청와대를 두고 기자는 이렇게 적어나간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청와대 내부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내수 경제를 살리겠다며 민관 경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른바 끝장토론을 벌였다 ... 이명박 대통령이 토론회에서 재계와 민간 관계자들의 얘기를 꼼꼼하게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인척 측근 비리 의혹의 충격을 딛고 일 중심의 경제 사령탑 행보를 재개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자가 쓴 것인지 청와대 대변인의 일기인지 분간키 어려운 묘사이다. 드라마 ‘가을동화’에 빗대어 ‘청와대 동화’라고 부른다.
날은 저물고 길은 멀어라
‘국민의 방송’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의 방송은 여권 야권 어느 쪽도 아니다. 여권, 야권 어느 쪽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시녀로 존재하는 저널리즘’이 범람하는 가운데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저널리즘’을 방송에서 구현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실현과 당위성은 잠시 접고라도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몇 몇 선진국에서 저널리즘은 시민사회가 사회 현안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잃은 채 정치적 현실로부터 멀어져가고, 얄팍한 선정성만을 쫓는 시대를 걱정했다. 사람들이 뉴스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법은 무얼까? 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뉴스시사에 매달리는 시사 마니아로 되찾아 올 방법은 무얼까? 이런 변화가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누가 그 일을 추진할 것인가? 그러나 누구도 답을 찾진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뉴스와 시사로 돌아오지 않았고 공공성과 공익성을 앞세운 공공 저널리즘은 쇠퇴해 갔다. 그런데 방송.신문들이 권력의 눈치만을 보며 제구실을 못하기에 시민이 신문을 창간하고, 유투브/팟캐스트로 시민 저널리즘을 전파하고, 아예 방송사를 하나 세우려 나서는 이 나라에서 저널리스트로 존재함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렇게 따지면 시민의 언론, 국민 방송은 사회의 최대 관심사이자 뉴스거리가 되어야 한다. 막연한 요구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려 깊고 비범하고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다수 시민의 요구는 그것 자체로 큰 비중을 두어 다룰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자기들 운명과도 관련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정치권력과 자본의 손에 자기 운명을 맡겨 놓고 있다는 반증이다. 저널리즘이 동시대 민중의 운명을 외면한다. 권력의 향배와 눈 맞추기에만 골몰한다. 눈은 침침해가고 돋보기안경을 추켜올리며 글을 쓰는 지금,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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