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가 ‘회초리 민생투어’를 마무리했다.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도 있었고 “무릎 꿇고 절하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들이 힘겹게 절하는 모습을 보고도 쇼라고 한다면 말이 되느냐”는 반발도 일었다. 그런데 문제는 쇼라는 비판이 민주당 내에서 강했다는 것.
민주당이 전국을 돌며 국민에게 사죄의 절을 하고 회초리를 청했다면 어떤 사람은 진정을 담았을 것이고 일부는 정치적 연명을 위해 쇼로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정도면 국민이 사죄로 받아들일 만하냐 아니냐’는 프레임 속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과 ‘쇼냐 아니냐’ 하는 프레임 속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건 전혀 다르다. 그걸 민주당 스스로 창출해내지 못한 것은 역시 허약한 지도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연히 회초리 민생투어에 모두가 빠짐없이 참여해 대대적인 대국민 사죄 캠페인을 벌이고 그 다음에 전략적인 갈등과 당권을 둘러싼 세 대결을 벌이는 게 마땅하겠으나 민주당의 우왕좌왕은 위기관리 차원에서 낙제점이다.
정치적 위기 모면, 패배 부정에서 초월까지
민주당의 지금 상황을 공조직의 위기관리 차원에서 들여다보자. 실패나 패배 이후 추락한 이미지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의 전략적 접근이다. 패배와 과오를 좀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우 부정과 변명, 희생양 만들기의 방법이 쓰인다.
부정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절반의 표를 얻어냈다. 보수의 응집이 워낙 강했다”
변명
“지상파 방송, 종편방송이 여권에 쏠려 있어서...”
“새누리당이 비겁하게 선거운동을 펴서...”
“저쪽이 워낙 강했다. 보수진보 양쪽이 모두 총궐기 하니 결국 보수층 인구가 6대4인 나라에서 어쩌겠는가?”
희생양 만들기
“주류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열심히 거들지 않은 비주류 책임이 큽니다. 저 사람이 가장 골치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진즉 비주류를 설득해 끌어안고 갔어야 하나 단일화로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 아닌가)
그 다음은 심정적인 동조를 구하는 방법이 있다.
충성심에 호소
“그래도 큰 틀에서는 민주당을 밀어주셔야 여당을 상대합니다...”
한국 사회는 정치문화가 집단주의 성격이 짙다. 내가 지지하는 집단이 곧 ‘나’라는 동일시와 확장성이 강하다. 그래서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집단과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켜 나가려 한다. 반대하던 정책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채택하면 ‘그래 그래도 되는 거지 뭐’하며 받아들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상황에 따라 자기 판단도 신념도 쉽게 바꾸고 적극 지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심에 호소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
사죄하기
“저희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감정에 호소
“우리 한 때 힘을 모아 정권을 창출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 번 해냅시다.”
자기 실현
“이번 아픔을 계기로 더 성숙한 모습과 체제 정비를 이룰 겁니다.”
차별
“저희는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이런 걸 다 내려놓겠습니다.”
... 새누리당의 주 전략이다. 이명박 대통령 치적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저희는 이렇게 뜯어 고치겠습니다”,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 놓겠습니다”로 나아갔다. 얼마나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태껏 기득권을 누리다 선거 때 내려 놓겠다 하는 것이 황당하고, 평소에 신뢰를 탄탄히 쌓은 것도 아니지만 집단주의적 성격의 한국 정치문화에서는 먹힌다. 핵심지지층 35%에게는 확실히 먹힌다. 그리고 35%가 믿으면 그 35%는 서서히 50%를 향해 번져가는 것이다.
초월
“잘 되어야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잘하겠습니다. 그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고민하고 애쓸 뿐입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알아듣기 어렵다. 그러나 열심히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두루뭉술하게 퉁치고 넘어가는 이런 기법을 ‘초월’의 기법이라고 부른다.
이들 방법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똑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쌓아 온 평판, 호의, 지지집단의 성격과 충성심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초월’의 예를 든다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지도자가 “잘 모르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다니까요”하면 안 먹힌다. “뭐 저런 사람이 지도자라고 나서....”하며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지도자가 나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국방을 튼튼히 하고 ....”이렇게 나오면 여권 지지자들은 환호를 보낸다.
얻으려 하지 말고 심어라
대중의 신뢰나 지지에서 위기에 처하면 조직이 일사분란하고 컨트롤이 잘 되는 것보다 대중여론에게 감정적인 일체감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더 급하고 효과적이다. “잘못했습니다” “사죄드립니다”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가 우선 먹히는 것이다. 논리정연한 분석 보고서나 자기중심적인 기자회견보다는 대중에게 바싹 다가가 비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민주당은 선거전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못했고, 선거에서 패배한 뒤 회초리 민생투어에서도 혼연일체가 되어 제대로 빌지 못했고, 그 이후 민심을 얻는데도 선거전과 마찬가지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제 국민은 새로운 야당을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국민의 표를 얻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가슴에 무얼 심을지 고민해 보라. 그것 없이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