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가 국공립병원에 약품을 납품하면서 1원에 낙찰받아 시끄럽다. 국공립병원의 1원 낙찰은 이제 관행으로 굳어져 2009년 48건에서 2012년 1560건으로 마구 늘고 있다.

1원에 낙찰을 받아 약품을 공급하면 뭐가 남을까? 의약계나 의료계에선 대형병원이 ‘약국에 가서 이 약을 사시오’라고 원외처방을 써주는 걸로 손해를 메운다고 설명한다. 제약업계, 유통업계, 대형병원 거래 당사자들이 모두 알고 이용해 온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은 곤란하다며 제약회사들의 모임인 제약협회가 의약품 1원 공급을 가로 막았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엄연히 공개경쟁입찰에서 1원에 낙찰 된 걸 협회가 가로 막는 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또 협회를 막아서고 있다. 국공립병원 입장에서는 1원 낙찰로 병원 수지를 개선하면 인센티브가 돌아온다. 싸게 사가라는 도매상이 있는데 기어코 제값으로 사야겠다고 하면 업무상 배임이 된다.

도매상들은 낙찰 받은 뒤 납품을 포기하면 계약보증금을 환수조치 당하고 1년간 제재를 받는다. 포기는 못하는데 제약사들이 1원에 약품을 주지 않으니 다른 도매상들에게 비싸게 사서 병원에 납품한다. 그러나 약품을 사들인 가격보다 싸게 팔면 약사법 상의 ‘구입가 미만 판매’로 위법행위이다.

정부당국, 의료계, 의약업계가 눈앞의 이익만 쫓다보니 비상식의 문화가 관행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모두 법대로 하는 것이고 계약을 지키려고 하는데 꼴은 이 모양이다. 법이 허술한 것이고 보건복지부가 업계 눈치를 살피며 허송세월한 탓이다.

대한민국 1원 낙찰의 전설.

* 현대건설은 6.25전쟁이 휴전에 접어들고 국토 재건이 시작되자 1958년 한강인도교 복구공사를 당시 1원에 낙찰 받아 이름을 알렸다. 비록 한강인도교는 1원이었지만 현대건설은 이후 정부발주공사를 거의 독점하며 재벌그룹으로의 성장기반을 다졌다.

* 서울 삼성동에 54층 높이의 무역센터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 건물 역시 1원에 공사를 맡긴 황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1원을 적어낸 건설사는 극동건설. 당시 추정 공사비는 600억 원이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초고층빌딩은 신동아건설이 지은 63빌딩 하나뿐이었다. 초고층빌딩을 지었다는 실적은 곧 신용과 기술력의 보증수표였기 때문에 극동건설은 1원에라도 지으려 했던 것. 지금도

* 1996년 2월 과학기술처 산하 항공우주연구소가 위성카메라를 납품받기 위해 입찰을 실시했다. 낙찰을 받은 업체는 미국의 위성제작업체인 TRW사의 기술지도를 받으며 위성카메라를 공동개발하게 되어 있었다. 기술진의 인건비와 미국 현지 체제비만 따져도 수억 원이 들어야 할 프로젝트였다. 입찰에 응한 현대우주항공은 8천7백90만원, 그러나 삼성항공은 단돈 1원으로 이 프로젝트를 따냈다.

내친 김에 1 달러 낙찰의 에피소드도 뒤져보자.

*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중공업으로 세계 강국을 만들겠다며 과감히 조선업에 뛰어든 뒤 세계 최대 크기의 골리앗 크레인을 설치했다. 그러나 배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없어 세계 최대의 골리앗 크레인은 단돈 1 달러에 팔렸다. 1달러에 낙찰 받은 기업은 한국 울산에 자리한 현대중공업. 그 후 이 골리앗 크레인은 한국 조선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낸다.

살펴 본대로 1원 낙찰의 선두주자는 건설업계이다. 정부 조달청 입찰에서 1원으로 성의를 보이면 다음번 큰 공사 입찰에서 배려를 해줄 거로 기대하고 1원을 써냈다. 그러다 정부가 덤핑 입찰을 규제하고 나서면서 불이익을 주자 1원 낙찰은 건설업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1원 낙찰은 전자 등 새로운 분야로 옮겨갔다. 첨단 분야에서 누가 먼저 시장을 차지하느냐가 걸려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과 설비, 소프트웨어에 대해 1원으로라도 낙찰을 받아 신기술을 익히려고 했던 것. 엄밀한 의미에서 덤핑이 아니라 시장 선점 내지는 독점을 위한 고도의 투자전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1원 낙찰은 분명 부패비리와 편법이 판치는 의료계.의약계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치부이다. 이제 뜯어고치겠다고 하니 조금 더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