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 철탑 문제가 8년 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전이 신고리 원전 5.6호기(2018~2019 완공)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대도시 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신고리에서 창녕 변전소까지 90.5킬로미터 구간에 161기의 송전철탑을 건설하고 765KV(76만5천볼트)의 초고압전력을 송출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이 송전철탑의 진행경로를 설계하는데서 시작된다. 밀양시 27개 마을을 지나기 위해 철탑 69개를 세워야 하는데 일부 철탑이 마을 근처를 지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송전철탑이 마을을 피해 높은 산에 세워질 계획이었으나 설계가 변경되었다. 산 위에 철탑을 세우려면 자재를 높은 곳까지 실어 날라야 하고, 공사하는데도 힘들고, 자연훼손도 더 크지 않냐는 것이 한전이 내세운 명분.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그런 저런 이유로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송전선이 마을 옆으로 지나는 피해 마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만만하다고 ....?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초고압 송전선로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가축, 수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소아백혈병 등 질병의 원인이 되고 면역력이 저하된다고 비판하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전자파가 몸에 이롭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암이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면역력 감퇴도 단기간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어서 입증과 보상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둘째 송전선로가 지나는 선로 주변 피해지역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송전사업은 국책 사업이다.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다. 송전철탑이 세워지는 땅은 시가로, 전선이 지나가는 땅(선하지)과 그 바깥 3미터까지는 시가의 30%를 보상한다. 2005년 전원개발촉진법을 만들면서 헐값에 강제수용이 가능해졌다. 한전 입장에서는 사업하기 편리해졌지만 농민들 입장에선 삶이 무너진다. 논밭이 망가지고 철탑이나 전선 밑에 있는 땅이라고 금융기관이 담보로 잡아주지도 않아 재산가치가 사라지는데 보상은 야박하다 못해 빼앗아 가는 수준이다. 시가로 1억5천만 원의 밭이 보상금 154만원, 시가 3억 원의 집과 땅이 보상금 700만원이면 누가 납득하겠냐고 피해 농민들은 호소한다.
농사를 짓는 입장에선 퇴직금도 연금도 없이 땅이 전부다. 평생 함께 해 온 땅을 헐값에 넘겨주고 떠나면 생존이 어렵다. 그러다 2012년 1월 밀양 주민 이치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의 농지가 시가로 4억 원인데 떠나라고 내몰면서 보상액은 6천만 원 뿐이었다. 고 이치우 씨의 장례는 숨진 지 77일 만에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의 일이다. 이치우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정치권이 나섰고 그 때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참 답답한 세상이다. 칼자루를 쥔 쪽에서는 법대로 하자고 버티고, 권력은 법대로 해결하라고 외면하다 꼭 사람이 죽어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지면 슬그머니 발을 들이민다.
생명을 끊어낸 자리에 새 생명을 심으며
그러나 아직 해결은 멀다. 최근에 한전이 인근 주민 및 사회단체들과 송전선로 주변 주민지원사업 협약을 맺어 잘 풀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단체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일부는 이장.면장이 아닌 평범한 주민이 서명해 대표성을 갖추지 못했음도 확인됐다. 국회 중재에 의해 대화 창구는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로 일원화됐는데 한전이 뒤집은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 등 정치권의 압력에 억지로 떠밀려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대책위원회는 밀양시 송전선 통과마을 주민의 과반이 넘는 1,584명의 서명을 받아 활동 중이다. 나이 70 ~ 80대 할머니들이 반대투쟁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노인들은 송전철탑 공사를 하러 가는 길목에 움막들을 짓고 24시간 교대로 지키며 난민 아닌 난민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처음에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움막도 없이 산길 맨 땅에서 잠을 자며 공사를 막아섰다. 젊은 용역들에게 얻어도 맞고, 욕도 먹고, 성적 폭언까지 들어가며 버텼다. 한전이 공사를 강행하며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할머니들은 고추와 상추를 심어 가꿔 산에서 밥을 해 드시며 공사중단을 호소했다.
나이 70, 80이 넘도록 시골 밭농사 짓던 할머니들이 국책사업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걸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나라 일이라면 뭐든 꼭 필요한 거겠지하며 합의해주고 넘어갈 양반들이다. 그런데 생존이 걸려 있으니 따져 묻는 거다. 왜 한평생 고생하며 착하게 살았는데 이런 대우를 받나 따지니 법이 잘못됐다 하고, 법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나 따졌더니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대규모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짓고, 사람 많이 살고 전기 많이 쓰는 도시까지 전기를 끌어오려니 송전철탑과 초고압 송전선이 여기저기 깔리게 된다. 수익을 위해 돈을 덜 들여 공사를 하려니 송전철탑이 힘없는 사람 마을을 짓이기며 지나간다. 도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네온사인, 냉난방 돌릴 수 있게 하려고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내주는 차별적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서울 밤거리를 지켜 본 한 할머니의 탄식. “시골에선 불을 하나 켜면 어느 것 하나는 꺼야 하지 않나 하고 꺼야 할 불을 찾는데 도시에 와 보니 온 천지가 불빛으로 .... ”
지난 주(3월 8일) 밀양 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70살 넘은 ‘할매’들이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상을 수상했다. 탈핵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환기시켰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 등을 방문하며 힘든 사람들을 챙긴 휴머니즘(할머니들은 부산 한진중, 제주 강정마을, 평택 쌍용차, 울산 현대차, 대한문 쌍용차 농성장 등을 격려방문했다), 그리고 소외된 지역 여성 노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점도 높이 샀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인권상 상금 중 일부를 불타버린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에 기부했다. 힘든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품으며 하나가 되는 것을 보라, 이것이 국민대통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