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2013/05/07 화] 세습 공화국, 돈과 지배 권력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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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어린 자녀들이 속속 억대 부자로 등극하고 있다는 소식이 어린이날 특집 기사로 전해졌다. 재벌.준재벌 부자의 대물림이 3대, 4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산 물려받은 어린이야 행복할지 모르지만 거기에 얽힌 우리 사회의 그늘들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얽혀 있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이야 어느 나라나 있다. 미국, 스웨덴만 해도 계층 간 소유자산의 쏠림과 불균형은 우리보다 심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답답하고 속이 부글거릴까?
왜 우리에게는 졸부들이 많을까?
그것은 땀 흘리지 않고 부자가 된 비율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아서이다. 미국의 400대 부호 중 70%는 스스로 돈을 번 자수성가형 부자다. 우리는 어떨까? 개인재산 1조원을 넘는 부자 25명 중 19명이 재벌가 후손들이다. 세습 부자인 것이다.
워렌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인 370억 달러(당시로 44조원)을 자선재단에 기증했을 때, 그 아들 피터 버핏은 "그렇게 많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건 미친 짓이죠"라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피터 버핏은 혼자 힘으로 공부해 음악가가 됐고, 자서전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이렇게 전한다.
"아버지는 아무 대가 없이 부를 물려주는 건 젊은이의 열망과 열정을 고갈시키며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부적절한 선물이라 여겼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으로 지배계급 상류층이 무너지면서 다들 그 자리를 노리며 뛰었다.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정치.사회.경제계에서 새롭게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이 되었다. 오랜 노력과 정당한 노력 끝에 부자다운 부자가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가족 내에 일제지배와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독재와 산업화를 겪은 아버지, 외환위기를 겪은 아들딸이 함께 모여 있다. 서구의 수백 년 근대화 과정을 수십 년에 압축하다보니 '시민 민주주의'와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르치고 배우고 체득할 기회가 없었다. 거기에다 식민지, 전쟁, 권위주의 통치 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성공한다는 기회의 평등이 자리 잡지 못했다. 결국 가족의 유대감과 단결력이 커지고 가족에 의지하는 것이 유리하니 가족끼리 챙기고 지키고 물려주려는 성향도 강해진다.
세습되는 건 돈이 아니라 지배 권력
그런데 세습이 그저 재산에서만 이뤄진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대기업 직원도 신분계급이 엄연하다. 오너의 자식이면 당연히 성골이고 임원이나 대주주 같은 외부 유력인사의 자식이면 진골 쯤 된다. 당연히 해외유학, 연수, 승진과 보직에서 차이가 난다. ‘현대판 음서제도’인 ‘임원 자녀 우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대기업 그룹 내에 엄연히 존재한다.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정규직 노조도 동의하는 세상이다.
의사면 다 의사가 아니다. 부모나 처가가 병원 하나 차려 준 유복한 의사가 있는가하면 병원 월세와 입주관리비 내는 것도 빠듯한 가난한 의사도 있다.
로스쿨 졸업하고 간다는 로펌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 자제나 유력인사들의 자제를 가려 뽑는다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를 보면, 부모의 월 소득이 100만원 많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점수 백분위가 2.9단계 올라간다. 자녀의 토익 점수가 16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재산의 세습은 신분의 세습이고 우리 사회 모든 기득권 세력의 특권 세습 체제를 구축하는 기반인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일생 동안 노력하면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국민 10명 중 6명(58.8%)이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사람은 28.8%였다.
그렇다면 자녀 세대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자녀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는 답변이 42.9%였고,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은 41.7%였다.
노력해 봤자 소용없고 내 자식까지도 소용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점점 늘어 70%, 80%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불평등이 깊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경멸과 분노가 커질 것은 분명하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실 기업과 권력은 자기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 지분율은 0.95%이다. 다른 대기업집단도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은 4~5% 수준이다. 몇 %의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를 지렛대로 이용해 기업 전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던 기업 그룹이 망한다 해도 거리로 나앉는 건 노동자이지 총수와 임원 가족은 아니다.
인간이 드러내는 욕망 중에 정복이 있고 독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가지면 멈춰야 하고, 늙으면 일을 접고 물러나 쉬어야 한다. 권력과 재산이 자기 대에서 끝난다면 그리 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권력과 재산을 자손 대대로 물려줄 것으로 여긴다면 욕망은 쉬거나 멈춰야할 한계선이 사라진다. 사회가 세습의 욕망을 누르고 접게 만들어야 욕망도 멈추고 사회가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욕망의 뿌리를 뽑거나 잘라 줘야할 책임은 우선 정부에 있다. 법과 제도로 세습을 강하게 통제해야 사회에서 얻은 부가 사회로 환원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넘치지 않게 하는 일은 교회도 책임이 있다. 그런데 교회의 자산이 커지자 '내가 목회했으니 내 교회'라며 아들에게 세습한다면 말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정녕 못난 세습들에 대해 정부가 눈 감고 교회가 면죄부를 주는 그런 사회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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