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8일에 추첨한 로또 546회 추첨에서 1등 당첨자가 30명이 나온 걸 두고 조작설이 등장했다고 한다.
"로또 1등 30명 ... 이게 가능해?"
"로또 1등 당첨자 30명 ... 조작설, 음로론 등 제기"
언론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제대로 취재해 쓴 기사는 없다. 내용은 조작가능성이 없다는 쪽인데 제목은 선정적으로 붙이고 뒤에다 '그래도 사람들은 조작된 건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면서 무책임하게 조작의혹설을 퍼뜨리고 있다.
1등이 여러 명 나온 복권추첨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독일에서는 1997년에 1등이 137명, 일본에서는 2005년에 1등이 167명이나 되는 진기록이 나왔다. 우리도 2004년 4월 23장의 당첨복권이 최고 기록이었다. 그리고 로또 당첨 번호의 조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감사원의 조사까지 이뤄진 바이다.(노컷뉴스 5월 20일, "로또 조작하려면...15분안에 시스템 4개 동시에 뚫어야" 참조)
때를 맞춰 미국에서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이 숨지기 전 아버지에게 복권을 사라고 해서 사 모았던 복권 중 하나가 54억 원에 당첨됐음이 확인돼 화제가 되고 있다.
텍사스에서는 쐈다하면 10점 만점에 10점?
심리학에서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언제나 과녁 한 가운데만 맞추는 명사수가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쏘고 난 다음에 가서 과녁을 그리는 것이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을 놓고 적당한 이야기들을 주위에 그려나가면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때 오류가 생긴다는 연구이다.
지난 3월 15일 미국 NBC뉴스는 교황 프란체스코 1세가 선출될 때 천사구름이 하늘에 나타나 온라인이 떠들썩하다고 보도했다. 찬사구름이라 치자. 그러면 왜 천사구름은 교황이 있는 바티칸, 교황의 고향 아르헨티나에 뜨지 않고 아무 관련도 없는 미국 플로리다 웨스트 팜비치에 뜬 걸까?
사람들이 아무런 관련 없는 현상이나 정보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을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한다. 특히 우연한 형상이나 소리 등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기를 쓰는 심리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하트 모양의 섬, 한반도 모양의 바위, 13일의 금요일도 그런 유형이다. 특히 우연하게 벌어진 일, 어쩌다 보니 그리 된 일이 평소보다 정도가 심하면 아포페니아 현상을 일으킨다. 이번 로또 1등 당첨도 5명이나 10명이면 조작설이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30명이나 되니 등장한 것인데 그렇다면 몇 명부터 조작설이 나오게 되는 걸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짜에 숨진 역사 속 인물들을 모아보니 유명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 날짜는 무슨 특별한 것일까? 아무런 날도 아니다. 누구든 1년 365일 중 하루를 잡아 세상을 떠난다. 지금까지 살다 죽은 인류는 수백억 명일 것이다. 그걸 365로 나누면 하루에 죽은 사람은 수억 명이다. 그 중에 훌륭한 사람과 유명한 사람을 추려내면 날짜에 얽힌 전설의 괴담이 만들어진다.
오류와 착각에 빠져 살다간 한 방에 훅 간다는 ...
인간의 의식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려 하고, 그런 것을 근거로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 불안한 내일을 예견해 보려 한다. 심리학에서는 '귀인현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것으로 놔두든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사람들은 조급해서 뭐든 빨리 원인을 찾아보려 한다. 못 찾으면 남는 방법은 조작이라고 믿는 것뿐이다.
"1등이 30명? 내 살아생전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어"라고 한다면 몇 십 년 밖에 안 살아서 그런 것이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자꾸만 눈에 띈다. 그러다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외면하는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이 복권 당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특정 복권 판매소를 꼭 가는 경우, 복권 사러 가는 날 목욕재계를 하는 사람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자신이 어쩔 수없는 것인데도 조종이나 영향력이 가능하다고 믿는 걸 '통제력 착각'이라고 부른다. 통제력 착각은 사회 현실 속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쥐거나 높은 지위로 뛰어 오르면 자신이 능력이 출중하고 사람 볼 줄도 알아서라고 생각한다. 웬만한 건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런 경향은 '나는 운명도 사회적 장벽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자존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실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인데 그쯤은 내 통제력 아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윤창중 대변인이 잘 나가다가 인턴 성추행으로 추락한 것도 그러한 '통제력 착각의 오류'로 볼 수 있다. 힘이 세면 가능성이 많아지긴 하지만 모든 걸 통제하고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감을 놓치면 빗나가고, 빗나가면 수습할 방법이 없는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위험한 것은 오류가 다수의 편견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 떠돌이 신세지만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나 전통을 지키면서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치고 악착같이 벌었다. 화교나 우리 교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엔 그들이 음모를 꾸미는 흉물이나 악다구니처럼 소개된다. 그런 편견은 그 사람들을 더욱 똘똘 뭉치게 만든다. 우리의 영호남 지역갈등과 지역주의도 그 뿌리는 결국 이런 오류와 편견의 구조화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언론들이 조작이 아닌 줄 알면서도 '로또 조작일까?'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아 손님을 끄는 것은 오류와 편견을 구조화시키는 위험한 행위이다. 최근 종편채널에서 '5.18을 북한군 소행'이라는 황당한 내용을 무책임하게 방송한 것은 위험이 아니라 참극에 가깝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모론에 귀가 솔깃하고, 그런 자극적인 선동을 기다리기도 한다. 거기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역시 그랬구나'라는 오류와 편견 속으로 사람들을 더욱 밀어 넣을 것이다. 잔혹하고 무책임한 '조작질'이자 반민족 행위이다.
종편채널들은 이미 스스로가 '통제력 착각'에 빠져 있다. 자기네 신문과 방송에서의 '조작질' 정도면 우리 사회를 이념대결의 수렁으로 밀어 넣어 수구장기집권을 꾀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신문과 방송을 갖고 있으니 그 능력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능력이 큰 만큼 오류도 크고 종말은 더 처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