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동포들과 그 후손들은 현재 "재일동포 6세"까지 대를 이어 일본에서 살고 있다. 일본은 재일한국인 사회를 흩어 놓으려 끈질기게 차별하고 핍박했지만 동포들은 일본에 매몰되지 않고 민족정체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말 우리 문화를 가르친 "민족교육" 때문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 교민사회에서 교포 2세만 되어도 민족성이 옅어지고 민족문화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비교하면 재일동포 사회 속에서 민족교육이 갖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내 우리 민족 학교 투쟁사
1945년 8월 광복 직후, 일본의 동포들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되찾고 자녀들에게 우리의 것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 설립을 서둘렀다. 그 때 내건 구호가 "돈이 있는 자는 돈을, 힘이 있는 자는 힘을, 지혜 있는 자는 지혜를". 이렇게 국어강습소로 시작된 민족학교 설립운동으로 1년만인 1946년 9월에 학교 수 525개, 학생 수 약 4만4천명에 이르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 냈다.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우리민족의 단합과 민족정신 계승을 일본 정부가 그냥 두진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의 단결도 싫어했지만 특히 왕권에 대항해 혁신을 부르짖는 좌파적 성향이 강해지는 것도 걱정했다. 점령군이던 미극동군 총사령부도 한반도에서 불거진 제주4·3사건과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 한반도 분단 반대투쟁의 불똥이 일본으로 튀는 것을 경계했다. 패전국 일본 시민들의 자주권 요구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염려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 민족교육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1948년과 1949년에 "일본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조선인의 민족학교를 폐쇄한다"는 폐쇄령이 내려졌다. 재일한국인 아이들은 일본 소학교.중학교를 다닐 것, 민족학교 과목에서 한국어를 뺄 것, 이상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학교는 폐쇄시키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로 인해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는 폐쇄되거나 일본학교에 강제적으로 통합되었다.
민족학교에 대한 강제 폐쇄는 유혈사태로 번졌다. 65년 전인 1948년 4월 24일, 고베 시에서 수천 명의 재일한국인이 현청에 몰려가 현지사로부터 민족학교의 폐쇄를 철회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당황한 미군 사령부는 일본 지사가 약속할 권리가 없으니 무효라고 선언하고 그 날 밤 고베 시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항의하다 일본 경찰과 미군헌병에 의해 검거된 동포가 1,973명. 그러나 항의 집회와 시위는 계속됐고, 오사카에서는 4월 26일 항의집회에 참가한 김태일 학생(당시 16살)이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재일한국인들의 저항을 '4·24 교육투쟁'이라고 부른다.
이런 희생 덕에 재일한국인 사회의 민족학교는 40% 정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이념대립이 남북분단이 되고 남과 북의 대결이 치열해지면서 재일동포 사회도 이념갈등도 더욱 격해졌다. 그에 따라 다시 좌파 성향의 재일동포 조직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에 대한 강제 해산이 벌어지고, 조련 산하의 민족학교들도 결국 강제 폐쇄 또는 개편에 다시 내몰렸다. 그러나 우리 동포들은 6.25 전쟁 후 1955년부터 다시 민족교육기관인 ‘조선학교’를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김일성 정권은 조선학교를 지원했고 이승만 정부는 지원을 거부했다. 이승만 정권의 기본입장은 반공반일이어서 모두 남한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고, 김일성은 이런 틈을 노려 재일동포 사회를 정치적으로 장악해 가기 시작했던 것. 이런 과정 속에서 조선학교를 북한이 설립한 학교라 오해하기도 한다. 민족학교는 좌우 진영 모두 세워 운영을 했고 조총련은 초중등 각급학교를 대거 세워 지금껏 '조선학교'로 고수하고 있는 반면 민단 측의 민족학교는 상급학교들은 차차 사라지고 소학교 수준에서 약간만 운영되고 있다. (친공산주의계의 동포조직은 재일본조선인연맹(약칭 조련). 이에 대항한 반공우파 조직은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 신조선건설동맹(건동)이다. 이후 조련은 조총련이 되고 건청.건동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된다). 이처럼 조선 학교는 북한이 세운 학교가 아니고 재일동포 사회 속에서 유구한 내력을 지닌 학교이며, 일본 인구의 0.5% 미만인 재일동포사회의 민족정체성을 이어가는 구심점이다.
아베의 역사왜곡에 이은 역사 지우기
일본의 모든 고등학교(외국인학교 포함) 학생에게는 1인당 12만엔의 ‘취학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보조금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것을 줄이고 없애는 중이다. 망언으로 주목받는 아베 신조 총리의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제도 부적용 방침”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일본의 학교교육법에 근거한 일본 제도권 학교로 조선학교를 뜯어고친다면 고교무상화 정책의 적용대상으로 넣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어’ 과목 외에 모든 과목을 우리말로 실시해 온 조선학교의 교육방침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취학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취학지원금은 학생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학교 지원금이 아니다. 학생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명백히 침해 하는 것이다.
결국 일본의 요구는 일본의 국가적 교육통제 아래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조선학교가 조총련을 통한 북한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 그러나 지금껏 지원하던 것을 북한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지금에 와서 끊을 이유는없다. 실제로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이에 걸림돌이 되는 소수 민족 특히 우리 동포사회를 제압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이런 의무교육 정책상의 차별은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들은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일본사회에 전파하게 된다. 실례로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채워주는 방범버저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서 회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다. 올 봄에는 도쿄와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에서 배외주의단체가 한국인에게 대한 '헤이토스피치(인종 등의 속성에 관련된 모욕적이고 공격적 표현)'를 공공연하게 자행했다. 혐한류 행진도 그런 부류의 하나이다.
오는 25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에서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 "치마저고리"라는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몽당연필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일본의 조선학교 문제를 알리고 후원해 왔다. 배우 권해효 씨가 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