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2013/06/04 화] 명예박사는 명예롭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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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방송진행자 오프라 윈프리(59)가 하버드대학교로부터 지난 30일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가난과 폭력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또 사재를 털어 자선재단을 만들고 전 세계 여성과 어린이 교육을 후원하고 있다. 모두가 그녀의 명예박사 학위를 축하하는 분위기.
네팔 출신 전설의 산사나이 아파 셰르파(53)도 미국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됐다. 12살부터 짐꾼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내린 아파는 등산가보다 먼저 산을 올라 밧줄을 깔아주고 짐을 날라주는 셰르파 일 외에 히말라야에서 숨진 사람들의 시신을 찾아 거두고 히말라야에 버려진 등산쓰레기를 수거하며 에베레스트를 21번 올랐다.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 가 청소부로 일하며 비영리법인을 만들어 고국 네팔 어린이 교육을 후원하고 있다.
명예박사 ... 시류 따라 권력 따라
명예박사란 ‘학술이나 문화, 기타 부문에서 뛰어난 공적을 남겼거나 인류 문화 향상에 특별히 이바지한 사람에게 학위 논문에 관계없이 주는 박사 학위’이다. 우리나라 명예박사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첫 번째 명예박사는 1948년 8월 서울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맥아더 장군이다. 당시에는 주로 미국인들이 많이 받았다. 해방직후에는 미국과 가까운 것이 성공의 발판이니 대학들이 신경을 썼지 싶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정치인들이 많이 받았고 최근에는 경제인들이 많이 받는 추세이다. 1994년까지는 교육부 승인 아래 수여했지만 지금은 올해 몇 명에게 준다는 숫자만 통보할 뿐 대학들 마음대로 준다.
서울신문 집계에 따르면 해방 후 2004년 초까지 명예박사 1,421명 중 1,155명 (81.3%)가 정관계 인사로 나타났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 대통령 측근과 고위 요직을 차지한 실세들에게 박사 학위가 대거 주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김형오, 이재오, 홍준표, 강재섭, 안경률, 정의화, 정몽준, 최경환, 정해걸, 이종혁 의원 등이 줄줄이 박사가 되었다.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명예박사들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법학명예박사 학위가 2개. 최규하 전 대통령은 법학.문학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치학,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정치학.법학,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학.철학.법학,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투쟁과 노벨상 수상으로 국내외 대학으로부터 무려 16개의 명예박사 학위가 주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학 박사학위가 3개. 이명박 대통령도 ‘명박 사랑’이라고 별칭이 붙을 만큼 여러 개 갖고 있다. 한국체육대학 명예 이학박사를 시작으로 경제, 정치, 외교, 행정학에서 8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아디스아바바대학교 환경학 명예박사 학위. 박근혜 대통령도 4개를 갖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프린스턴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이다. 명예박사 아닌 일반박사 학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사학위를 거절했다. 대통령이 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무슨 박사학위가 필요하냐는 것이 답변이었다고. 최고통치자로서 권력의 정점에서 별 의미를 두지 않은 듯.
정치인들의 명예박사 학위에 얽힌 사연들도 흥미롭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원불교에 원음방송을 허가해 준 데 감사하다며 원광대가 명예 정치학 박사를 수여했다. 원광대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 대통령에게 모두 학위를 수여한 특이한 경력(?). 영산대는 홍준표 경남지사 의원시절에 명예 부동산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반값 아파트 제도를 추진한 공로이다. 그런데 경남지사가 되어 그 지역으로 갔으니 영산대의 선견지명이라 할 만. 카이스트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유력후보이던 시절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수여해 속보인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에는 대학에 큰 건물을 지어 주거나 기부금을 낸 기업인들에게 박사 학위 수여가 많다. 정주영 회장은 서강대에서, 이건희 회장은 고려대에서 그 밖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 최신원 SKC 회장, 윤병철 하나은행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회장 등에게 명예박사 학위가 주어졌다.
호서대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주었는데 2002년 카터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자 우리 대학 동문이 노벨상을 탔다고 홍보해 눈길을 끌었다. 한남대는 육해공군 참모총장, 언론사 대표, 외국대 총장 등에게 배려를 했고 대전대는 대전시장, 건설사 회장, 재향군인회장, 안마원 원장까지 두루 명예학위를 주었다. 그 뿐이랴 어떤 지역에서는 교육감이 선거자금을 빌려 쓰고 대가로 명예박사학위를 알선하기도 하는 등 명예박사 학위는 그다지 명예스럽지 않은 감투로 전락해 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통계를 보면 2008~2012년 국내 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는 907명에 이른다. 역시 정치인,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기금을 지원한 재계 인사들이 대다수이다. 대학마다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남발하며 학위 장사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박사 학위도 뇌물이 된다
미국의 MIT, 코넬, 버지니아 대학은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09년 애리조나 주립대도 명예박사 학위와 관련해 화제가 됐다. 애리조나대는 오바마 대통령을 졸업식에 참석해 연설을 해주도록 부탁했다. 이 정도면 당연히 명예박사 학위정도는 내줄 법도 한데 애리조나 주립대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제 대통령 임기를 겨우 시작했으니 뚜렷한 업적이 없고 잘 하는 지 두고 봐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그것이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는 명예박사를 해당학교가 아닌 국가의 명예처럼 여기고 명예박사 학위라도 학문적 성과가 없으면 수여 대상이 되지 못한다. 부패가 적어 청정국가로 불리는 핀란드는 공직자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는 뇌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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