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고 후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는 어느 정도일까? 사고 항공기의 탑승객들은 치료를 끝내고 가족에게 돌아가더라도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커다란 사고나 충격을 당했을 때 처음 48시간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안, 초조에 시달린다. 며칠이 지나도 이런 증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공황발작, 환청, 해리 현상 등으로 지속되면 급성 스트레스 장애라고 할 수 있다. 해리현상은 기억 망각, 혼돈 및 방황, 이중인격 등의 장애를 겪고, 꿈속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갖는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이 1달 이상 지속될 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될 수 있으니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당부한다.
사고 후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상태가 악화되는 걸 피하려면 사고 충격이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가까운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가족들이 경험부족으로 어려우면 상담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피해자들은 자꾸 혼자 있으려하고 의심이 많아지고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가족 친구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상황을 이해해줘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심리상태나 생각을 더 이야기하게 되고 힘든 부분에 대해 솔직히 도움을 요청하면서 예방과 치료가 수월해 진다.
승무원의 경우 사고 항공기 승무원들은 시간을 두고 의료팀으로부터 충분한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비행에 적합한 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신과 검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후 의료팀으로부터 이상 없다는 진단이 내려진 뒤 승무원 본인이 자신감을 갖고 다시 항공근무를 하겠다고 동의를 해야 한다.
밀양 할매.할배들은 왜 그 비행기를 탔을까?
지난 3일에는 밀양 송전탑 관련 주민들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6월 한 달에 걸쳐 송전탑 공사가 진행됐던 밀양 지역 4개 면 주민 132명을 대상으로 법조계,의료계 단체들이 동원돼 현장조사와 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위험이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쟁이나 테러를 겪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것보다 오히려 높다는 분석 결과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단계를 보이는 주민 비율이 35.4%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걸프전 참전 미군(32%)들에게서 나타난 유병률보다 높은 것이다. 무엇이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까지 몰고 갔을까?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을 계획하면서 주민들 의사를 존중하지도 않고 논의과정에 넣어주지도 않은 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게 하고 땅값은 떨어지고 생계가 불안해진 것, 계속되는 주민들에 대한 고소와 고발, 한전과 시공사.용역들의 위협적이고 무례한 행동 등이다.
거기에 얹어서 경찰들도 한전과 용역 편에서 움직였다며 공권력에 대한 배신감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기동대 500여 명을 공사현장에 투입해 주민 보호보다는 공사 진행 지원에 나섰다는 것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행범도 아닌데 주민을 체포하고, 수사도 편파적이었고, 노약자들인데도 과잉대응으로 위협하고, 언어폭력도 행사하고, 통행을 제한하고 주민들이 신변보호를 요청하면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던 마을 주민들끼리 한전 측이 접근해 회유하고 보상금을 내놓으면서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것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다. 농사를 지으며 서로 돕고 가족처럼 지내다 이웃끼리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갈등을 겪자 스트레스가 증폭된 것이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지금의 마을 그대로 남겨주고 예전처럼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 바라는 전부라고 한다. 그러나 경찰과 한전, 시공사, 용역들은 보상금을 더 타내려는 욕심이나 님비 현상으로 몰아갔고 이것 역시 스트레스를 높이는 원인이 됐다.
지금도 항공기들이 추락하고 있다
달리 설명하자면 밀양 송신탑에 얽혀든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비행기에 태워지면서 비행기 사고로 외상.내상을 입고 있는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항공기 사고라는 눈에 보이는 재난현장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밀양과 같은 다른 재난현장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는 정리해고, 개발 현장은 세입자 축출, 언론 현장은 보도 통제에 편집국 폐쇄, 기자피디 해고 ....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게 될 재난의 현장들이다.
국정원의 댓글 사건도 국민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준 인재(人災)이다. 공권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혼란에 빠졌다.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을 거라 믿었던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운동에 나서 비난 댓글을 달아 왔고, 책임자는 뇌물비리 의혹까지 터져 나온다. 국민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국민의 정치적 혐오와 사회 불신으로 번지고,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조차 멀리하고 싶어한다. 국가공동체의 결속이 급속히 약해지고 그 짐은 당연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얹어질 것이다.
국정원 사건으로 항공기가 불시착하고 외상성 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샌프란시스코로는 전문조사요원이가 급파되는데 국정원 사건은 조사가 어느 때나 이뤄질 지 난감하다. 조사위원 교체 문제로 입씨름만 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내상을 입은 국민들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