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마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 중국에서는 메이유(梅雨)라고 부른다. 장마에 매화를 붙여 부르는 까닭은 봄을 알리며 매화(梅花)가 피고, 매화 열매(梅實)가 익을 무렵부터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초여름 장마는 매실 장마?
한반도라고 해서 초여름 장마, 초가을 장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 제주도에는 4월 중순부터 비가 자주 내리는데 '고사리 장마'라 부른다. 그래서 해마다 4월 하순이면 고사리 축제가 성황리에 열린다. 일본도 3월 하순부터 보름에 걸쳐 내리는 비를 ‘유채 장마(菜種梅雨)'라고 한다. 이모작을 하는 논에서는 먼저 보리를 거둬야 하는데 보리수확이 끝날 무렵 내리는 비는 보리장마.
장마철 폭우가 계속되면 경제도 출렁인다. 농산물 작황이 나빠지니 농가수입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 그 후유증으로 가을에 농산물 가격은 폭등하기 십상이다. 닭고기 한우 가격도 오른다. 비가 지루하게 오래 내리면 외출이 줄어들며 카페, 식당 등 내수경기가 위축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대신 인터넷 쇼핑이나 배달주문이 늘어난다. 비가 계속 내리면 부침가루가 많이 팔린다는 것은 정설, 빈대떡이랑 짝을 맞출 막걸리도 소비가 늘어난다. 일식당, 초밥집은 장마가 반갑지 않다. 워터파크나 자연공원도 비가 반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 초여름 장마가 길어지면 피서경기가 크게 흔들리며 여름 한 철 대목인 업종들이 타격을 입는다. 건설업도 일할 수 있는 날이 줄어드니 일용직 일감은 줄고 공기는 길어져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들은 비 오는 기간을 예측해 레인마케팅에 나선다. 비오는 날은 가격을 살짝 낮추는 인하 전략도 있고, 무료 음료 제공도 있다. 쇼핑백에 비닐을 덧씌워주는 이중포장 서비스도 벌이고 습기제거제를 증정품으로 주기도 한다.
한 쪽에선 폭우로 피해를 입고 장마처럼 길게 드리워진 경제불황으로 고충을 겪는데 명품쇼핑을 하는 것이 눈치 보이기도 한다. 그런 고민 때문에 요즘은 명품을 사되 명품 브랜드 백에 넣고 다니지 않는 풍조도 있다한다. 구입한 제품을 배달시킨 뒤 빈손으로 매장을 나서거나 적당한 다른 백에 담아 들고 가는 방법이다. 명품 족들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 명품 샀다는 티를 안 내는 ‘스텔스(Stealthy) 소비’.
과메기가 지고 정어리가 뜬다면 ...?
장마 기간에 내리는 비를 불평만 할 것은 아니다. 수자원 차원에서 매우 경제적 가치가 크다. 2천5백억 원 가량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통에 '장마'라는 말도 의미가 달라져야 할 처지이다. 기후변화로 장마 전선이 소멸한 뒤에도 국지성 호우가 마구 퍼붓는 등 한반도 기후가 전반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더위가 점점 강해지고 또 빨리 찾아온다. 열대야도 늘었다. 특히 장마 종료 후의 강수량이 크게 증가했다. 이미 학계 일각에서는 '장마'보다는 '우기'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서서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온대기후의 '장마'에서 아열대기후의 '우기'로 옮겨간다는 주장이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도 한류성 어종인 명태와 대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와 멸치, 오징어 어획량은 늘어가는 중이다. 아열대 어종인 농어와 방어도 늘고 있다. 해수욕장 개장 날짜도 계속 빨라지고 있다. 1년 사시사철 해수욕장을 운용하는 비즈니스전략도 가능해질 모양이다. 지금 젊은 세대는 아마 아열대 한반도에서 사는 경험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창조경제라고 해서 당장의 일자리와 IT분야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이런 기후변화를 반영한 국가정책과 산업의 조정이 짜임새 있게 이뤄지는 것도 창조경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