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이 국회에 묶여 있다. 2014년 새해 예산은 총지출 357조 7천억 원, 총수입 370조 7천억 원 규모이다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서민생활 안정, 건전재정 기반 확충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 2014 예산, 큰 기대는 어려워
그러나 2014년 예산에서 총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는 4.6% 15조7천억 원 늘어났다. (추경 기준으로는 2.5%). 여기서 의무지출증가액이 10조원 쯤 된다. (국가재정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뉜다. 의무지출은 법에 의해 지출해야 하고 지출 규모도 규정에 의한 것으로 정부가 임의로 통제할 수 없는 예산이다). 의무지출 증가액이 10조원이면 정부가 새롭게 늘린 예산은 총지출 357조 원 중 5조 7천억 원 정도. 지난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판단되는 근거이다.
올해 상반기 세금 거두어들일 목표 대비 징수실적인 ‘세수진도율’이 46.2%로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반기도 나아질 건 없어서 올해 세수결손은 나쁘면 10조원 정도까지 커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금이 덜 걷혀 재정이 비면 증세를 통해 채울 일이지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증세에는 소극적이다. 조세부담률이 낮고 직접세보다 간접세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소득세와 법인세를 올려야 하는데 증세 없이 재정건전성을 회복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정부는 비과세·감면 정비로 1조8천억 원, 지하경제 양성화로 5조5천억 원, 금융소득 과세강화로 3천억 원을 더 끌어오겠다 하는 것. 그러나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은 아직 그 실효성이 분명치 않다.
그리고 정부가 2014년 예산을 짜면서 적용한 경제성장율 3.9% 역시 국내 외 경제전망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것이어서 실현가능성을 걱정케 하는 대목이다.
* 아직도 판치는 개발지상주의
세출에서 SOC 분야의 예산은 ‘경제활력.일자리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예산의 특징은 그 혜택이 대기업에게 집중되기 쉽다는 것. 이미 4대강 사업에서 목격한 대로 자칫하면 전시성 사업이나 정치적 선심 사업에 이용되고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은 사업들이 있을 수 있어 꼼꼼히 따져야 한다.
2014년 예산에서 SOC 예산은 겉으로 보면 2013년 대비 4.3% 감소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예산이 사라진 마당에 그 정도 줄어드는데 그쳤다면 여전히 과다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문제제기이다.
통일부가 추진하는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사업은 내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총사업비 2,500억 원을 투입하려 한다. 내년 예산에는 402억 원이 책정돼 있다. 조사설계, 토지매입, 지뢰제거 비용 등이다. 이 평화공원은 남북합의가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북한의 군부가 동의해야 하고 우리가 상당한 규모의 돈을 쥐어주어야만 이뤄질 수 있을 게 뻔하다. 현재로서는 UN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에서도 납득을 못하는 상태인데 예산은 배정됐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인 사업이지만 박 대통령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사업이다. 더구나 비무장 지대가 한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시 생태계로 지구촌의 보물이라는 점에서 반대여론도 비등한데 개발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착 후에 할 사업인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위해 먼저 할 사업인지 따져 볼 일이다. 비슷한 사례로 지금 경기도 연천구에는 한반도통일미래센터가 세워지고 있다. 520억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남북한 청소년들이 만나 민족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글쎄? 북한 청소년들이 얼마나 올 수 있을까?
철도부지 등 국공유지에 소형 임대주택 20만 가구를 짓는다며 9,530억 원을 예산에 반영한 행복주택사업도 미분양 주택이 넘쳐나는 시점에서 타당성을 지적받는 사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다 실패하면 토지주택공사가 패가망신할 수 있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따지고 보면 논란이 될 만한 예산은 더 있을 것이다. 의료산업을 키우고자 펀드를 조성한다고 돼 있지만 의료서비스가 민영화 되면서 대형병원이 돈 벌고 국민은 의료비 증가로 고생한다면 승인해 줄 예산일까?
정부의 사업 내용들도 영 미덥지 않다.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이 밝힌 내용을 보면 미래창조과학부와 녹색성장기획단에서 각각 제출한 ‘2014년도 창조경제 사업 목록’과 이명박 정부 때의 ‘2013년도 녹색사업 목록’을 대조해 보니 MB정부 5년 동안 실시된 녹색사업과 사업명이 똑같은 동일사업은 94개(28.5%), 사업명이 다르지만 유사사업이 17개, 결국 33.6%인 111개가 비슷하거나 동일한 사업이다. 이가운데 계속해야 할 사업으로서 창조경제에 얼마든지 포함시킬 수 있는 사업도 있지만 이름표 바꿔 달기로 예산만 유지하는 사업은 얼마나 될까?
국회예산정책처도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에서 예산안에 담긴 8,313개 사업 가운데 359개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전체 사업의 4.3%는 예산 삭감 등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 공약사업인 기초연금, 행복주택, 셋째아이 등록금지원도 문제사업으로 지적됐다.
실효성도 없는 사업도 많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비용 대비 편익을 판단하는 경제성 분석(B/C) 결과를 토대로 한다. 1 미만이면 경제성이 없다고 보는데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은 30개 사업 중 국토교통부의 5개 사업과 산업통상자원부의 2개 사업이 B/C 비율 1 미만으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일자리 예산의 핵심은 우리나라가 저임금 고용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에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우선 공공부문에서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정부는 2015년까지 6만5천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올해는 우선 47%(30,904명), 내년에는 30%(19,908명), 2015년에는 23%(14,899명)가 전환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예산을 이유로 지키지 않는 기관들이 많고 지난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대로 아예 전환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산하기관도 있다. 과연 새해 예산 중 비정규직 전환 예산이 어디에 얼마가 담겨 있는지 분석해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 각계각층에게 맞춤형 복지정책을 쓰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념이다. 새해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올해 대비 8.7% 증가한 105조 9천억 원. 그러나 늘어난 돈은 절반 이상이 공적연금 증가액(3.3조원), 건강보험 국고지원액(0.5조원) 등과 주택분야로 투입된다. 제대로 분류하면 일반행정이나 국방예산 등으로 들어갈 비복지성 예산이니 복지확대로 계산할 게 아니다.
돈이 없는 걸 어쩌냐고 하겠지만 복지는 돈이 넉넉할 때 선심 쓰는 정책이 아니다. 복지 예산을 투입하면 그것이 시장소비로 돌아가고 그것이 생산으로 이어지며 경기조절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복지재정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국회는 정부 예산의 이런 불가피한 상황과 불합리한 내용들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기존 사업 가운데 없앨 것 없애고, 합칠 것 합치고, 낭비는 줄이고 복지는 늘려야 한다. 특히 예산에 대한 엄중한 심의는 야당의 몫이다. 예산안 심의는 허술히 한 채 처리만 막아선다면 그것이야말로 발목잡기이고 그러다 막판에 대충 심의해 넘긴다면 그것이 졸속처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