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2/12/09 <내 삶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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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김장을 해서 자식들 주기 바쁘지만 나는 이집 저집 다니면서 김장을 도와주고 한 포기씩 얻어 옵니다. 요즘엔 힘들어서 김장을 사먹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김장은 직접 해서 자식들 바리바리 싸주는 게 부모로서 마음도 편하고 자식들도 좋아하니 힘들어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는 큰딸이 결혼을 하고부터 제대로 된 김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도 아이들이 다 나가 있고 둘이 살아서 그냥 몇 포기 정도만 했는데 손맛 좋은 사돈이 한집서 고생하면 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 게 벌써 25년 전입니다 큰아들은 장모님이 해주신다고 둘째아들은 며느리가 솜씨 좋아 그때그때 해먹는다고 신경 쓰지 말라하니 내가 할 일이 없어졌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제일 팔자 편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합니다. 남편이 갑자기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내가 팔자 편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참 복이 많다는 걸..남편이 혼자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 복도에서 쓰러져 열흘 만에 황망히 떠났을 때 혼자 병원에 가게 한 걸 원망하고 자책했습니다. 우울 감으로 힘들 때 근처 사는 큰딸이 점심시간이면 매일 와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억지로라도 복지관을 가면서 기운을 얻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꿈에 나타나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갈 거라고 방안에 걸린 옷을 달라고 합니다. 좋은 곳에 가는데 예쁘게 하고 가라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주니 환하게 웃으며 방문을 나가는데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내가 걱정이 되어 아직도 못 떠났나 싶어 훌훌 털고 일어나 지금은 노인일자리 일도 하고 틈틈이 수영도 다닙니다. 맞아요. 내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팔자 편한 사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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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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