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2/12/28 <내 삶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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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저하고 12살 차이가 나는 큰언니가 미국 플로리다 올란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든 똑같겠지만 타국에서 다른 피부색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의 삶은 녹록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니는 잘 버텨냈고 지금은 대형마트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며 미국인 남편과 16살, 11살 두 딸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더 낯설어 할 정도로 미국에서 완벽히 자리를 잡은 언니네 가족이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은 해가 갈수록 타국에 있는 자식 생각이 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보다 미국 총기사고가 나오면 시차 계산도 없이 바로 언니에게 전화 하셔서는 '거기 너무 위험해서 안 되겠다. 이참에 싹 정리하고 애들이랑 같이 들어오너라.'' 그러면 언니는 '엄마! 여기는 괜찮아!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데~ 텍사스까지 여기서 비행기 타고 가도 세 시간이에요.! 여기는 아무렇지도 않아~ 걱정 하지마세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엄마의 얼굴엔 며칠 동안 수심이 가득하십니다. '내가 이제 살날이 얼마나 되겠니. 한국 들어와서 같이 살면 얼마나 좋아. 애들도 내가 봐주고...' 엄마는 엄마의 분신 같았던 언니를 타국 땅에 보냈다는 사실과, 손녀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언니가 한국에 들어올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닙니다. 몇 년 전 아빠의 환갑이어서 미국에서 형부와 아이들 데리고 한국에 잠시 들어왔던 적이 있는데 조카들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혼혈이었고 어디를 가든 한국 사람들이 조카들에게 관심이 과했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예쁘다며 칭찬을 해주면 좋을 걸, '아이고! 애들이 어떻게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네.' '애들이 아빠 닮아서 예쁘다!' 하며 예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그것이 언니가 한국행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후 언니는 지금까지 7년간을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고 엄마와의 관계에도 이전에 없던 벽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다음 달 한국에 들어온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나는 언니 가족들이 이번만큼은 한국에서 좋은 기억만 만들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북적해질 본가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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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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