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1/18 <내 삶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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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가 대학에 붙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중풍으로 쓰러져 일 년 넘게 누워 계셨고, 아버지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꾸려가셨습니다. 추운 겨울 고무장갑을 끼고 손빨래 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학교에 가려는 저를 보며 아버지는 “오늘 일요일인데 집에서 설거지 좀 하지. 학교에 공부하러 가야 돼?” 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셨습니다. 학력고사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딸이 독서실도 아니고 산 밑에 추운 학교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러 간다는데도 아버지는 공부보다는 엄마를 돌봐 집안일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오빠는 대학을 다니다 등록금이 버거워 군대를 가고, 저는 대학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제 꿈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원비도 많이 들어가고 아버지마저 회사를 그만두신 상황에서 제가 대학에 간다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마저 제가 공부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아 저는 누워 있는 엄마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왜 엄마는 하필 이런 때 아프셔서 내 앞길을 가로 막고 있나? 내 친구들은 엄마들이 독서실도 한 달씩 끊어 주고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도시락도 두개씩 싸주고 용돈도 많이 주는데 나는 이게 뭐람? 도시락도 매일 내가 싸야 하고, 반찬도 형편없고, 용돈도 한 푼 없이 매일 걸어 다녀야 하고 참고서도 중고책 사서 봐야 하고, 그 흔한 잠바도 없이 얇은 옷이 이게 뭐람... 아버지는 담임선생님과 진학 면담 후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방과는 갈수 있다는데 공무원시험도 걸릴 수 있는 실력이라네. 집안을 생각해서 공무원시험을 치면 안 될까?‘ 결국 저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랐고 지금은 30년째 공무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대학 간 친구들이 부러워 울고 그랬는데 지금은 돈 벌면서 엄마아빠에게 효도 하고 오빠도 공부 시킬 수 있어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되지만 다른 길을 가다보면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걸 깨닫게도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를 희생한다는 게 나를 위한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많은 고민들 속에서 내가 가는 길이 못마땅해도 그 뒤에는 또 다른 희망이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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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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