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3/02 <엄마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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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엄마는 90세이십니다. 3년 전부터 셋째 누나가 함께 살고 계십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외로워 보이는 엄마 때문에 항상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은 꼭 가려고 애썼고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드립니다. 그래도 누나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더욱 건강해지고 목소리도 밝고 기억력도 더 좋아지시고 음식도 아주 잘 드신다고 합니다. 요즘 복지센터에 다니시는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림이 꼭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 어린이 그림 같습니다.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내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지정해두었습니다. 엄마는 잠이 안 오면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십니다. 우리 집 황소나 밤나무 그리고 딸의 얼굴도 그린다고 합니다.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말을 할 때 마다 ’고로케?‘ 라고 하십니다. 그래 라는 말이죠. 엄마는 농사를 지으셔서 그런지 항상 첫마디는 ’거기도 비 오나? 날이 춥제?‘ 그리곤 ’밥은 먹었냐? 옷은 따듯하게 입고 다녀라. 목소리가 왜 그러냐? 감기 걸렸냐? 날이 추우니 보일러 틀어놓고 자라.‘ 내가 장사를 하다 보니 엄마를 보러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엄마를 보러 꼭 시간을 내곤합니다. 엄마는 어릴 적 이야기를 할 때면 회상에 잠기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기는 다 빈집이지만 너희들 키울 때는 애들이 집집마다 일곱 여덟씩 되니 동네가 박작박작하니 그때가 참 좋았는데..." 엄마에게 과거이야기는 추억이고 즐거움이고 웃음이십니다. 엄마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자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좋습니다. 그러다가 앨범까지 나오면 그날은 밤을 새는 날입니다. 이렇게 엄마와 추억거리를 꺼내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엄마를 만나 ’엄마 오늘은 뭐하셨어요?‘ 하면 ’오늘은 삽작에 나가봤지. 그리고 마을회관에서 점심 먹었지.‘ ’점심은 뭐 드셨어요?‘ ’동태 탕 국물이 시원하더라.‘ ’저녁에 반찬은 뭐 해 드셨어요?‘ ’누나가 이거저거 해줘서 우리는 잘 먹는다. 항시 조심하고 내 걱정은 말아라.‘ 그렇게 오늘의 통화도 어제와 같고 내일도 같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이 통화가 연애시절 연인과의 통화보다 더 가슴 떨리고 기다려집니다. ’엄마 다음 주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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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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