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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유년시절 이맘때쯤이면 농촌 마당엔 노란 병아리가 탁구공처럼 쪼르르 굴러 다녔습니다. 시골 고향집에 가면 지금도 오래 묵은 어리 하나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행랑채 시렁에 걸려 있는데 병아리를 가두어 기르기 위하여 싸리나 대나무를 엮어서 둥글게 만든 물건이 어리죠. 땅거미가 몰려올 즈음 어리 주변에 모이를 뿌려두고 돌을 괴어 두면 병아리들이 아장아장 어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병아리가 다 들어간 걸 확인하고선 돌을 빼어내는데 깜박 잊고 괸 돌을 안 빼어 그만 살쾡이나 족제비가 병아리 몇 마리를 물어간 적도 몇 번 있었지요. 봄이면 둥우리 속에서 암탉이 달걀을 품다가 3주가 지나면 병아리가 나오는데 새싹 돋아나는 텃밭, 뒤뜰, 마당 에서 노는 병아리를 보면 앙증맞게 귀여워 만져보다가 깃털을 우산처럼 펼치고 달려드는 어미닭한테 쫓겨 감나무 위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지요. 강아지가 호들갑을 떨거나, 솔개가 하늘에서 빙빙 돌때가 있었는데, 그 순간 어미닭은 긴장하며 날개를 활짝 펴고, 꼬꼬꼬 병아리를 불렀는데, 병아리들이 달려가 안기면 날개로 꼬옥 감싸 안던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능금 빛 노을이 물들 무렵 집에 와보면 한 마리는 소죽 쑤는 가마솥에 빠져 있고, 쥐가 물어 갔는지, 몇 마리가 안보여 여기 저기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엔 집집마다 닭을 많이 키웠는데요, 읍내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달걀 10개를 나란히 짚으로 엮은 꾸러미를 내다 팔아 고무신, 농기구, 호롱불 석유 등 생필품을 사오기도 했고, 동네 회갑잔치나 친척에게 인사로 달걀이 선물로 오가기도 했습니다. 알을 낳고 닭이 울어 행랑채 왕겨더미로 가보면 거기엔 갓 낳아 아직 따스한 달걀 몇 개가 있었는데 조심스레 들고 점방으로 달려가 과자나 학용품도 사곤 했지요. 현금이 귀했던 그 시절 농촌에선 달걀이 현금처럼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요즘엔 잊혀지고 사라져간 풍경이지만 암탉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던 고향집 마당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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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이맘때쯤이면 농촌 마당엔 노란 병아리가 탁구공처럼 쪼르르 굴러 다녔습니다. 시골 고향집에 가면 지금도 오래 묵은 어리 하나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행랑채 시렁에 걸려 있는데 병아리를 가두어 기르기 위하여 싸리나 대나무를 엮어서 둥글게 만든 물건이 어리죠. 땅거미가 몰려올 즈음 어리 주변에 모이를 뿌려두고 돌을 괴어 두면 병아리들이 아장아장 어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병아리가 다 들어간 걸 확인하고선 돌을 빼어내는데 깜박 잊고 괸 돌을 안 빼어 그만 살쾡이나 족제비가 병아리 몇 마리를 물어간 적도 몇 번 있었지요. 봄이면 둥우리 속에서 암탉이 달걀을 품다가 3주가 지나면 병아리가 나오는데 새싹 돋아나는 텃밭, 뒤뜰, 마당 에서 노는 병아리를 보면 앙증맞게 귀여워 만져보다가 깃털을 우산처럼 펼치고 달려드는 어미닭한테 쫓겨 감나무 위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지요. 강아지가 호들갑을 떨거나, 솔개가 하늘에서 빙빙 돌때가 있었는데, 그 순간 어미닭은 긴장하며 날개를 활짝 펴고, 꼬꼬꼬 병아리를 불렀는데, 병아리들이 달려가 안기면 날개로 꼬옥 감싸 안던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능금 빛 노을이 물들 무렵 집에 와보면 한 마리는 소죽 쑤는 가마솥에 빠져 있고, 쥐가 물어 갔는지, 몇 마리가 안보여 여기 저기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엔 집집마다 닭을 많이 키웠는데요, 읍내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달걀 10개를 나란히 짚으로 엮은 꾸러미를 내다 팔아 고무신, 농기구, 호롱불 석유 등 생필품을 사오기도 했고, 동네 회갑잔치나 친척에게 인사로 달걀이 선물로 오가기도 했습니다. 알을 낳고 닭이 울어 행랑채 왕겨더미로 가보면 거기엔 갓 낳아 아직 따스한 달걀 몇 개가 있었는데 조심스레 들고 점방으로 달려가 과자나 학용품도 사곤 했지요. 현금이 귀했던 그 시절 농촌에선 달걀이 현금처럼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요즘엔 잊혀지고 사라져간 풍경이지만 암탉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던 고향집 마당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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