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3/15 <엄마의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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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지난 주말에 엄마한테 다녀왔습니다. 며칠 전 아빠가 국내산 이면수를 살 수가 없다고 지나는 말씀을 하셨는데 주말에 장을 보다가 깔끔하게 손질된 이면수가 있길 레 샀습니다. 그리고 엄마 냉장고를 열면 남은 음식을 여기저기서 나온 플라스틱 일회 용기 뚜껑으로 대충 덮어 두시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쓰시던 유리로 된 그릇 들이 여러 개 있는데 가뜩이나 손힘도, 부실해진 두 분이 까딱해서 그릇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항상 불안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그릇을 바꿔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말에 마트에 가서 사이즈별로 몇 개 정도 필요할지 따져보고, 무엇보다 밀폐용기가 각양각색이라 하나하나 열고 닫아보면서 너무 빡빡하지 않은지 손에 잡히는 그립감이 좋은지 따져보고 제일 좋은 것들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닳아서 가운데가 불룩해진 뒤집게, 망이 다 헤져버린 채반도 사이즈별로 사고.. 집에 와서 세척기로 싹 돌려 씻어 친정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준비하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엄마가 이렇게까지 살림을 챙겨줘야 하는 당신의 모습에 너무 속상해 하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릇을 꺼내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지요. “엄마도 아빠도 이제 손힘이 없으신데 유리 그릇 쓰는 게 너무 불안하고, 뚜껑 없는 그릇을 넣어두니까 냉장고 공간도 너무 많이 차지해서 엄마. 엄마 살림인데 내가 너무 참견한다고 기분 나빠하면 안 돼.” 라고 나름 웃음으로 마무리 한 건데 그 말끝에 결국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십니다. 너무 고마운데 서글프다고..이렇게 늙어가는 게 너무 서글프다고...그래서 꼭 안아드렸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냉장고가 아주 가벼워져서 좋다고, 고맙다고, 유리그릇은 이제 다 싸서 버려야겠다고..엄마도 마음이 편하다고...하셨습니다. 나이 들어 점점 일상이 힘들어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는 말씀...나도 한 30년 후면 알 수 있겠지요. 엄마의 냉장고가 가벼워진 만큼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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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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