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3/27 <내 삶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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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간만에 어머니와 근처에 사시는 이모님 모시고 외곽으로 나가 바다와 산과 들을 맘껏 구경했습니다. 두 분은 89, 91세로 지난 겨울을 몹시 힘들어 하셨습니다. 추워서 밖으로 나가기가 불편했고 두 분이 화상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목소리만 들었습니다. 따뜻한 지방이라 유채꽃은 만개했고, 수선화, 진달래, 개나리도 예쁘게 피어서 사진도 찍고 맛 집에 들러 향토음식도 먹었습니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야산으로 접어드는데 이모님이 차를 잠깐 세워 보라 하십니다. 어머니와 손을 잡고 내리시더니 진달래꽃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는데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 지요. 한참 후 저에게 비닐봉지를 가져 오라고 하시더니 진달래꽃잎을 따서 넣으십니다. "응, 쓸데가 있어, 집에 가서 알려 줄게." 두 분은 한 잎, 한 잎 정성껏 따서 비닐에 넣었습니다. 집에 오자 어머니와 이모님은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팬과 식용유를 준비하고 자리를 잡으십니다. 양푼에 찹쌀가루를 넣고 익반죽 해 동글동글 빚어 팬에 구우며 산에서 따온 진달래꽃잎을 올려놓습니다. 어릴 때 만들어 먹었던 진달래꽃 화전이라며 나이 90에 만들었다며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두 분이 웃으십니다. 사진을 찍어 형제들에 보내니 "뭐야, 무슨 떡이 이렇게 예쁘지." 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따뜻할 때 이웃집에 몇 개씩 가져다주라고 해서 돌리는데 요리 잘 하는 어르신이 계셔서 TV에서 본 떡을 먹는다며 사과를 주시는 분, 고등어를 주시는 분, 사탕을 주시는 분 수확이 컸습니다. 가을에 귤 농사 지어 나눠 먹기도 하는데 화전을 돌리니 반응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엄마, 이모 모시고 또 바람 쐬러 가요. 내년, 내후년에도..그러자 어머니 보다 두 살 많으신 이모는 "내가 내년까지 이 세상에 있을까 모르겠다만, 있으면 다시 만들어 줄게." 내년, 내후년을 기대하며 두 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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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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