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4/12 <내 삶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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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가 심하던 시기에는 마을 주민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 아예 가지 않을 때도 있었고 가더라도 성묘만 하고 왔는데 이번에는 어릴 때 살던 옛집도 찾았습니다. 산 밑에 ㄷ자 모양으로 담장을 친 집인데 어릴 적 살 때는 초가집이었으나 고향을 떠나고 난 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슬레이트로 지붕을 바꾼 모양인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지 비어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무성한 잡초가 말라 있고 곳곳에 흙벽이 무너진 곳도 보입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낡은 툇마루를, 점심을 드신 후 목침을 베고 낮잠을 주무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부엌문도 열어보았습니다. 그때와 같이 무쇠 솥 두 개가 나란히 걸려있고 아궁이는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궁이 앞에서 불도 많이 땠고 고구마와 밤을 구어 먹었으며 학교가 늦겠다 싶으면 뜨거운 밥을 식힐 시간이 없어 찬물에 말아 부엌에서 허겁지겁 먹고 10리 길을 걸어 학교를 가곤 했죠. 대문과 붙어 있는 외양간을 보니 당시 키우던 순하던 암소도 생각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새벽같이 쇠죽을 끓이셨습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소를 끌고 풀이 많은 곳으로 데리고 가 풀을 먹였습니다. 소가 풀을 뜯는 동안 잔디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하고 메뚜기도 잡고 잠자리도 잡던 행복 했던 시절. 이제 옛집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 계시고 폐가가 되어가고 있으나 어렸을 적 언제나 나를 포근히 감싸주던 곳이었습니다. 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한적하던 곳이 최근 시내로 통하는 큰길이 나면서 문전옥답은 주택지로 바뀌고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자치기, 제기차기하며 놀던 마을 한가운데 있던 친구네 집은 흔적도 없었으며 그때 같이 놀던 그 아이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변해가는 마을을 보니 공연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으나 어릴 적 살던 고향은 언제나 아름답고 애틋한 옛 추억을 소환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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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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