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4/14 <누군가의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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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점심시간 도서관 휴게실에는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이 많아요. 도시락을 싸오는 분도 계시지만 라면이나 즉석 밥을 데워 먹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점심을 먹으려고 전자레인지에 즉석 밥을 데우고 있었습니다. 전자레인지가 1대 뿐이라 점심시간이면 대기가 필요한데 마침 다음분이 밥과 라면을 데우려고 렌지위에 올려두면서 저에게 말을 거는 거예요. “라면을 렌지에 데워먹으면 산에 가서 먹는 라면 맛이 나서요.” 렌지 앞에서 눈이 마주치니 어색함에 한마디 하시나보다 하고 “잘 익어서 맛있겠어요.” 하니 계속 말을 하십니다. “전에 등산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산을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안 다녀요. 그냥 동네 걸어 다니면 되는데 산 따라다니다가 관절이 다 나갔어요....” “아, 예“ 하며 기다리는 2분이 내성적인 저에게는 참 길고 어색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분이 궁금하지 않은 얘기를 왜 계속 하지? 하며 경계심이 들고 다른 목적이 있으신 건가? 의구심도 들고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전자렌지의 ‘땡’하는 완료 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거 다 됐네요. 얼른 데우세요.“ 하고는 구석 자리에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제 뒤 테이블에 앉은 그 분은 다른 분에게도 ”뚜껑을 잘 안 닫았더니 좀 튀었네.“ 하며 식사를 하십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생각하니 그 분은 낯가림이 없고 사람과 말하는 걸 좋아 할 뿐이었는데 제가 경계부터 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저랑 눈이 마주치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했을 텐데 말이죠.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표정하고 서로 못 본체한다는 말이 생각나며 잠시 웃음이 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어쩌다 눈 마주치면 그저 인사 형식으로 살짝 웃기도 하는데 그때 상대방이 정색하거나 고개를 돌리면 무안할 때도 있고 그래서 외면하게 되지요. 사람에게 친절하라고 배우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여자아이는 모르는 사람의 다정함을 경계하라고 배우기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좋은 사람과 나쁜 의도를 구분하는 건 여전히 어렵네요. 첫인상이나 첫마디로 서둘러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깨닫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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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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