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5/29 <그날의 버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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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며칠 전, 지방의 한 시외버스 정류장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아주 오래전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여고생이던 저와 단짝 친구와 소소한 일로 마음 상해서 한 동안 서먹서먹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여름방학을 맞았죠. 이대로 공백기를 가지면 안 되겠다 싶어 시골에 가 있는 친구를 만나러 2시간 거리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지갑과 친구의 주소가 있던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친구 집은 이제 주소를 모르니 갈 수 없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버스비가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상점에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돈을 빌려야겠다 싶었습니다. 한 상점으로 들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 사장님은 큰 소리로 “불쌍한 얼굴로 와서 내일 꼭 돌려주겠다며 간 사람이 어디 한 둘 인줄 아나! 다시 와서 돌려주고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네. 딴 데 가서 알아봐!” 꼭 돌려드리겠다고 간곡히 사정했지만 여사장님의 마음을 바꾸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남자분이 자신의 상점으로 가시더니 선뜻 돈을 꺼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내일 꼭 돌려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난 분명히 약속드렸고, 그 빌려주신 돈으로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 애타던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야한다는 사실이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돈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한명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며 화를 퍼부어댔던 여 사장님의 말, 괜찮으니 다시 안와도 된다는 남자 사장님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다시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던 내 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습니다. 전 바로 일어나 2시간 거리를 다시 버스를 타고 가 그 돈을 돌려드렸습니다. 멀리서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던 여 사장님과, 다시 오리라 기대하지 않으신 듯 역시 놀란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따스하게 웃으시던 남자 사장님을 뒤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참으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말에 약속을 지킨 내 자신이 대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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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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