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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주말을 지나던 궂은비에 우울히 집안을 서성이다 오래전에 쓴 듯한 이렇게 비 내리던 날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점심 식사에 흰 머위 대 볶음이 콩가루에 묻혀 나왔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우리 일행은 기린이라는 유쾌한 면소인 현리 차부 뒷골목의 허름한 집에서 산나물과 된장국으로 늦은 점심 허기를 때울 때우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대는 유리 창 너머로 억수 같은 장대비가 내리고. 그때 문이 열리며 낯선 할머니가 비에 흠씬 젖어 광주리를 이고 들어섰다. 그녀가 광주리를 이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주인아주머니가 한 소리 했다. ‘할매 오늘은 늦었고 만요. 벌써 시장에서 사다 반찬 만들었다요. 담에 다시 와요.’ 난감한 할머니는 나가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있었다. 그때 맘 약한 나와 눈이 마주 쳤다. ‘뭐예요?’ 할머니 대신 식당 아줌마가 ‘우리 집에 야채 갖다 주는 할 멘데. 요즘은 머위 대를 삶아 껍질을 까서 가져오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안 오는 줄 알고 다른 데서 사와서 사줄 수가 없네.’ 어제 저녁에 머위를 베다 삶아서 새벽부터 멍석 위에 홀로 앉아 해가 뜰 때까지 껍질을 까서 광주리에 이고 이십 여리를 걸어 면소에 도착해 몇 푼의 돈으로 바꾸어 국수도 사고 멸치도 사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다는데... ‘그게 다 얼마 예요?’ 할미는 주인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는 중에 식당 아주머니 ‘다 해봐야 돈 만원이지.’ 나는 호기롭게 이만 원을 주고 그걸 샀다. 그리고 비가 그쳤다. 내린 천 상류에 미림이란 마을에서 송어 루어 낚시질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가 그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차 안에 있던 검은 봉지에 담긴 머위 대를 발견했다. 그런데 너무 더운 차에 두었던 탓에 머위 대는 다 쉬어 버렸다. 집사람이 혀를 차며 갖다 버렸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머위대의 껍질을 손톱이 빠지라고 까고 있는 그 할매의 촉촉한 눈가가 잊혀 지지가 않아서... 그렇게 이십 리를 이고 온 그 나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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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지나던 궂은비에 우울히 집안을 서성이다 오래전에 쓴 듯한 이렇게 비 내리던 날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점심 식사에 흰 머위 대 볶음이 콩가루에 묻혀 나왔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우리 일행은 기린이라는 유쾌한 면소인 현리 차부 뒷골목의 허름한 집에서 산나물과 된장국으로 늦은 점심 허기를 때울 때우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대는 유리 창 너머로 억수 같은 장대비가 내리고. 그때 문이 열리며 낯선 할머니가 비에 흠씬 젖어 광주리를 이고 들어섰다. 그녀가 광주리를 이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주인아주머니가 한 소리 했다. ‘할매 오늘은 늦었고 만요. 벌써 시장에서 사다 반찬 만들었다요. 담에 다시 와요.’ 난감한 할머니는 나가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있었다. 그때 맘 약한 나와 눈이 마주 쳤다. ‘뭐예요?’ 할머니 대신 식당 아줌마가 ‘우리 집에 야채 갖다 주는 할 멘데. 요즘은 머위 대를 삶아 껍질을 까서 가져오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안 오는 줄 알고 다른 데서 사와서 사줄 수가 없네.’ 어제 저녁에 머위를 베다 삶아서 새벽부터 멍석 위에 홀로 앉아 해가 뜰 때까지 껍질을 까서 광주리에 이고 이십 여리를 걸어 면소에 도착해 몇 푼의 돈으로 바꾸어 국수도 사고 멸치도 사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다는데... ‘그게 다 얼마 예요?’ 할미는 주인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는 중에 식당 아주머니 ‘다 해봐야 돈 만원이지.’ 나는 호기롭게 이만 원을 주고 그걸 샀다. 그리고 비가 그쳤다. 내린 천 상류에 미림이란 마을에서 송어 루어 낚시질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가 그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차 안에 있던 검은 봉지에 담긴 머위 대를 발견했다. 그런데 너무 더운 차에 두었던 탓에 머위 대는 다 쉬어 버렸다. 집사람이 혀를 차며 갖다 버렸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머위대의 껍질을 손톱이 빠지라고 까고 있는 그 할매의 촉촉한 눈가가 잊혀 지지가 않아서... 그렇게 이십 리를 이고 온 그 나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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