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6/07 <내 삶의 길목에서>


Listen Later

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딸이 전화를 했습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게 전화기 너머로 느껴집니다. 무슨 일이 있냐 했더니 아무 일 없고 갱년기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언제든 오면 되지 뭘 망설이냐?’ 했더니 ‘엄마는 아빠가 힘들게 할 때 어떻게 견뎌냈냐’ 고 묻습니다. 오래전 딸이 어릴 때 집에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모르게 처리한다고 했는데 딸이 말은 안 해도 알고 있었나 봅니다. 딸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은 하지 않고 혼자 삭이려합니다. 나도 그랬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맞는 줄 알았죠. 그렇게 하느라 혼자 많이 힘들었습니다. 딸도 지금 그런가봅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옛날에 해주던 수제비가 먹고 싶은데 아무리 수제비 맛 집을 찾아 다녀도 그 맛이 안 난다고 그걸 먹으면 힘이 날거 같다고 합니다. 그거 못해줄까 얼른 오라 했더니 아픈 엄마에게 미안하다 합니다. 괜찮다고 퇴근해서 오라고 하면서 나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딸은 수제비를 진짜 좋아합니다. 그것도 얇게 뜯어서 쫄깃쫄깃 한 수제비를.. 밀가루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 숙성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얼른 슈퍼에 갔습니다. 비싼 햇감자를 한바구니 샀습니다. 딸이 좋아하는 걸사는 건 하나도 망설여지지 않았습니다. 딸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멸치육수를 내고 햇감자를 숭숭 썰어 끓이다 수제비를 얇게 뜯어 넣었습니다. 햇감자도 분이 곱게 나게 쪄놓았습니다. 딸이 애써 웃으며 들어옵니다. 뜨거운 수제비를 한 그릇 뚝딱 먹더니 또 달라며 내밉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릇을 다 비운 딸이 웃으며 말합니다. 이제 힘이 난다고 이 힘으로 뭐든 다 잘해낼 수 있을 거 같다고.. 나도 우리 딸 믿는다고 엄지 척을 했습니다. 딸이 왜 힘든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툴툴 털고 잘 해결해 가리라 믿습니다.

See omnystudio.com/listener for privacy information.

...more
View all episodesView all episodes
Download on the App Store

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 5
  • 5
  • 5
  • 5
  • 5

5

3 ratings


More shows like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View all
CBS 김현정의 뉴스쇼 by CBS

CBS 김현정의 뉴스쇼

187 Listeners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by CBS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38 Listeners

아름다운 당신에게 강석우입니다. by CBS

아름다운 당신에게 강석우입니다.

3 Listeners

FM POPS 한동준 입니다 by CBS

FM POPS 한동준 입니다

0 Listeners

새롭게 하소서 by CBS

새롭게 하소서

7 Listeners

정다운의 뉴스톡 530 by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7 Listeners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by CBS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41 Listener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by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52 Listeners

세바시 청년 by CBS

세바시 청년

1 Liste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