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09/17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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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친정아버지는 불같이 급한 성격으로 호랑이 같으시고 친정어머니는 세상 급할 일 없는 천하태평 거북이십니다. 저는 아버지를 닮아 좋게 말하면 엄청 부지런하지만 뭐든 빨리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려 잘 다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아지 매가 오십 중반이 되고 보니 영 딴사람이 되어갑니다. 너그러워진다고 할까요. 마음이 태평양 같아집니다. 이런 자신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네요. 학교 행정 실에 근무하는데 방학 중에는 학생들처럼 쉽니다. 개학날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버스에 탔는데 조용하던 버스 안이 웅성웅성 기사님 쪽을 모두 쳐다봅니다. 승객 한분이 "기사님! 이 길이 아닌데요?" 버스기사님이 급 당황 어쩔 줄을 몰라 하십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까지 58번 만 운행하다 오늘 59번 버스를 몰게 되어서 노선이 헷갈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적지까지 늦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좀 황당했지만 금 새 '그래 그럴 수 있지. 젊은 기사님이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 습관은 몸이 기억하는 건 당연한 거지. 나도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은데.' 긴 방학 쉬고 개학날 출근하면 은근 뻘쭘 하지요. 개학 이튿날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께 실장님이행정 실 직원들 소개를 하십니다. "공사계약담당 과장이고요. 급여담당 이계장님이고요 그리고 특수행정실무 이???" 제 이름을 기억 못해 당황하십니다. 그러자 제가 눈치를 채고 환하게 웃으며 셀프소개를 마쳤습니다. 아무리 방학에 후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름도 기억 못하시는지 너무 하시네 참말로.' 하지만 금 새 '그래 그럴 수 있지

. 나도 실장님 연세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걸?' 이렇게 일상 속에서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게 되니 어떤 일도 화날 일이 없습니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씀씀이로 살다보니 결국 행복해지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라는 것을 나이 들어가며 배우고 깨달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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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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