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의 저녁스케치

2023/10/25 <내 삶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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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오랜만에 언니네 집에 갔습니다. 언니네 집은 한적한 주택가였는데 근처에 소아과병원이 생겨 병원 앞 도로와 골목길까지도 차량이 넘쳐났습니다. 조금이라도 가깝게 주정차를 하려는 차량으로 양방향소통이 안됨은 물론이고 내리고 타는 어린이와 보호자들로 아주 복잡했습니다. 겨우 병원 앞 큰 골목을 빠져나와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언니 집은 골목 맨 끝집. 주차도 아주 요령이 필요한 곳인데 길에 들어서자 앞에 걸어가고 계신 어르신이 보입니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따라갔습니다. 행여 차 소리에 놀라실까 조심했는데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울 아버지는 참 건강하셨고 70대 중반까지 손수 운전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이제 순발력이 떨어지는 거 같다고 운전대를 놓겠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날 난 맘이 참으로 슬펐습니다. 울 아버지가 이제 정말 늙으셨다는 걸 실감한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94세에 먼 나라로 떠나셨는데 앞서 걸어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에서 아버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골목 끄트머리쯤에서 머리가 아주 하얗고 고운 할머님이 손짓을 하고 소리를 치시는데 아마도 어르신께 빨리 길을 비켜주라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다 할머님이 달려 나오시더니 할아버지 손을 끌며 내게 고개를 숙이십니다. 주차를 하니 두 분이 손을 꼬옥 잡고 나를 바라보며 어디 왔냐고 물으십니다. 언니집이 여기고 동생이라고 말씀을 드리자 고맙다며 또 고개를 숙이시는데 참 송구했습니다. 미안하실 일도 고마워하실 일도 아니고 천천히 안전하게 걸으시는 뒤만 따라왔다고 오히려 면구스러워하니 내게 마음이 고맙다고 하셨다. 언제 부터인지 매일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가, 그래봐야 몇 분 차이 안 나는 시간 속에 갇혀 살았단 생각이 들며 이제는 더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잠깐의 시간동안 울 아버지 생각도하고 여유 있는 마음도 먹고, 어르신 내외가 내게 주신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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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향의 저녁스케치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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